해타원 고은경 교무님!
좀 더 우리 곁에 머물며 함께 하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셨네요. 쾌유하여 그토록 원하는 보은의 일터로 다시 나가시기만을 동지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했는데,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떠나시니 저희들의 마음은 애석하기만 합니다.
해타원 님을 처음 뵈었을 때를 생각해봅니다. 남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종법사님 특인으로 영산대 2학년에 편입하셨지요. 큰 키에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품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던 해타원님. 구도에 대한 열정과 늘 교단의 스승님들을 모시고 한결같이 공부하며 저희들의 귀감이 되셨지요.
저희 학년이 함께 2학년 여름방학 때 완도에 가서 좌산 종법사님 훈증과 함께 법타원 종사님 모시고 정전 대의 공부를 했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해타원님이 공부모임을 주관하여 예비교무 도반들에게 스승님들께 법맥을 대고 공부하도록 인도하셨지요. 동창들과 연령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상 없이 어울리며 수보리로서 학년을 이끄시느라 남모르는 애로도 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서성로교당에 첫 교역의 길을 내딛었을 때 모범적인 교역생활로 교도님들의 사랑을 받으셨고, 청소년 교화에도 열정을 다하셨지요. 모스크바교당 근무 시에는 한국학교 교장으로서, 또한 세종어학당 창설에도 큰 역할을 하시며, 헌신적인 교화활동을 하셨습니다. 이어 홍콩교당의 어려운 해외교화를 하시는 가운데 혼자 근무하시면서도 매일 정전공부와 적공을 놓지 않으시고, 밖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인연들을 귀히 여기며 교도님들의 마음공부 길을 열어주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홍콩교당에 근무하실 때 백주년 성업 성금을 내기 위해 용금을 쓰지 않고 모아 근검저축하며 성금을 내셨던 일 등은 공심으로 교단사에 사 없이 합력하는 정신을 일깨우셨습니다.
교화자로서 사람을 대할 때는 늘 진심으로 대하여야 하며, 우리가 힘이 없을 때는 <정전> 원문에 맥을 대고 해야 자신공부와 교화를 힘 있게 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교화성장이 뜻대로 되지 않음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어느 지역에나 정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내 마음공부를 먼저 세밀히 하며 인연들이 다가올 수 있는 실력을 갖추라 하신 말씀 등 교화를 하는 데 있어 본말과 순서를 알려주셨지요.
교화를 하며 인연관계로 부딪히는 일로 문답 감정을 하면 다 들어주시고, 마무리는 늘 교법으로 풀어갈 것과 인간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며 자비로 풀어갈 것을 당부하셨지요.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 있어 늘 교법과 스승께 맥을 대고 본원에 향하도록 방향을 이끌어 주셨던 해타원님 감사합니다.
5년 전 뜻밖의 암 선고를 받은 후에도 주변에 걱정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치병 중에도 의연하고 당당한 수도인의 모습으로 스승님의 법문을 깊이 신봉하며, 자력생활을 철저히 하며 신심과 공심을 더욱 굳건히 지키는 모습으로 저희 동지 교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투병 중에도 카카오톡으로 법문 한 귀절씩과 산책하면서 만난 소박하고 아름다운 야생화 사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인연들에게 보내시었죠. 그 정성심을 저희는 또 배웠습니다.
해타원 고은경 교정님!
긴 투병생활로 지치신 몸과 마음 잠시 법계에서 편히 쉬시며, 마음은 청정한 한 마음에 주 하시고, 서원과 원력은 더욱 굳게 세우시옵소서. 건강한 새 몸으로 일원 회상에 속히 오시어 저희들과 다시 정다운 도반으로, 진급하는 출가자로 만나옵기를 심축 드리옵나이다.
87도반과 모든 선후진 법동지들의 마음을 모아 올리옵나이다.
원기105년 10월 18일 발인식 전무출신 대표 정개현 합장
해타원 고은경(解陀圓 高恩鏡) 교정은 원기88년 서성로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모스크바교당, 홍콩교당 주임교무로 봉직했다. 늦게 출가했지만 강한 책임감과 남다른 자비심으로 초임지 서성로교당에서 소년원 마음학교를 열어 청소년교화에 새 길을 열었다. 또한 출가 전, 16년간의 교직생활이 바탕이 돼, 모스크바교당 세종학당 개설의 주역으로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려 교화에 일조했다. 이후 홍콩교당의 교화 초석을 다지던 중, 발병하여 치료에 전념했으나 끝내 쾌차를 보지 못하고 10월 12일 열반했다. 해타원 교정의 세수는 61세, 법랍 22년 8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