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가 넘쳐나고 홍보가 일상인 시대에 작은 일은 부풀리고 사소한 일은 과장하는 행태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희생을 미화하여 이름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강렬하고 헌신을 과장하여 명성을 얻고자 하는 시도가 집요한 인간일수록 정작 타인의 친절은 잊고 잊었다는 생각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당대 불교의 심장인 북위北魏의 수도 낙양에 도착한 달마는 양梁 무제을 만난다. 무제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그 법에 따라 적극적으로 교리를 실천하며 국가의 재정을 모두 쏟아 부어 수많은 사찰을 세우고 경전을 저술하는 등 불교 신봉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그런 무제가 이러한 자신의 공덕에 대해 묻자 달마는 그 공덕은 무공덕이라고 냉담하게 답했다. 당황한 무제가 부처에 대한 믿음이 간곡하고 진리에 대한 실천이 투철하며 승려들에 대한 정성이 진심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무가치하다면 부처님은 우리에게 대체 무엇을 행하라고 했느냐고 다시 묻자 그분은 어떤 것도 이른 바 없고 아무것도 가르친 바 없다고 차갑게 응수하고 자리를 떴다.
인간은 부富에 대한 기대보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듯이 얻게 된 상황에 대한 만족감보다 잃게 된 정황에 대한 아쉬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우리는 종종 남에게 베푼 도움은 명심하면서 다른 사람의 배려는 쉽게 실념하며,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한 대우는 오래 기억하면서 상대에게 준 모욕은 쉽게 망각한다. 또한 챙긴 이익에 대한 감사보다는 입은 손해에 대한 원망이 더 우선하며 이루게 된 성과에 대한 고마움보다 빼앗긴 혜택에 대한 분노가 더 앞선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안으로 자신을 헤아리지 않고 밖으로 상대방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한 말의 곡식이라도 만종萬種의 은혜에 해당할 것이며, 남에게 이롭게 하는 사람이 자기가 베푼 것을 계산하고 보상을 기대한다면 비록 큰 돈이라 하더라도 한 푼의 공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 <채근담>의 경고는 유공덕의 가치와 무공덕의 한계를 일깨우는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또한 자신이 남에게 베푼 공은 기억하지 말고, 남에게 저지른 과오는 기억에 두며 남이 나에게 베푼 은혜가 있으면 잊지 말고, 원망이 있으면 곧 잊어버리라고 한 <채근담>에서의 언설 또한 소태산 대종사가 당부한 좋은 인연을 오래 가지기 위해서 유념해야 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은혜를 입고도 은혜를 베푼 사람이 섭섭함을 줄 때 그것만을 서운해 하여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거나 남에게 은혜를 베푼 후에 보답을 바라며, 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전일에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에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면 그 인연이 원진怨瞋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우려 했다. 이는 자신이 선행의 주도자라는 과시나 시혜의 당사자라는 생색이 결국 바람직한 인간 관계의 파국을 초래하기 십상임을 염려한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 뿐만 아니라 오른손도 모르게 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준 것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기억의 모래로 삼고 받은 것은 대리석에 새기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자만과 사심私心을 경계하고 유공덕을 이루는 첫걸음임에 틀림없다.
9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