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와 낙원건설
2002-04-19 전재만
향산 안이정 종사
1. 대각의 의의
현대의 모든 인류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오직 이 지상에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일이요, 우리 나라 국민이 바라는 것은 민족이 하나로 뭉쳐 남북 통일을 이루는 일이요, 우리 개개인에게는 각자 주어진 직책 아래 노력한 만큼 평화롭게 잘 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물질문명은 우리 인류의 생활에 많은 혜택을 입혀왔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만큼 인류에게 손상을 입게도 하고 더욱이 핵무기와 전쟁무기의 발달로 인류생명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도 같이하고 있어 물질의 풍요만으로는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각자가 일생 내지 영생토록 행복하게 사는 길이며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 세계평화를 이루는 길인지 방황하고 있습니다.
민족들은 이를 바로 세울 인재를 찾고 있으나 세계 모든 지도급 인사들 역시 이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방법없이 현재의 상황만 비판하고 있으며 각자 이익만 도모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바람으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 회상 새 주세불이신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80여 년 전에 대각을 이루시고 세계의 장래와 미래를 전망하시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아래 교단을 열어 정신개벽을 위해 교법을 선포하시고 인류 구제를 위해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교법으로 80여 년간 교화하며 훈련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혼란해진 원인은 모든 사람이 물질에 현혹되어 인류도덕이 말살되었기 때문이고 더욱 중요한 원인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사람으로서 해야할 도리를 알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진리 가운데 나서 진리 속에 살다가 진리로 돌아가고 또 다시 진리 가운데 나서 영생 무궁토록 이 진리 안에 살고 있건마는 그 진리를 모르고 삽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진리가 베풀어주는 막중한 은혜를 입고 살건마는 그 은혜를 모르고 삽니다.
예를 들면 물고기가 물 속에 살건만 그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 역시 진리 가운데 살면서 그 진리를 모르고 진리의 은혜 속에 살건만 그 은혜를 모르고 산다면 저 미물에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새부처님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어린 나이에 우주의 자연현상을 보시고 저 하늘은 어찌하여 저렇게 깨끗할까? 저 깨끗한 하늘에 어찌하여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불며 비가 오는 것일까? 저 하늘은 얼마나 높고 넓고 큰 것일까? 이 천지에 조화를 이루는 근본주체는 무엇일까? 이에 의심이 맺혀 이 의심 저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마침내 의심천지가 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여년간 스승의 지도 없이 구도고행(求道苦行) 끝에 마침내 우주의 큰 진리를 깨달으셨습니다. 어떠한 진리를 어떻게 깨달으셨던 것인가?
첫째, 우주의 원리를 깨달으셨고 두번째로 내가 어떻게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는가? 지나온 경로를 생각하시다가 또 한가지 깨달음이 있었으니 자력으로 구하는 중 사은의 도움이 있었다는 생각에 사은의 큰 은혜를 깨달으셨던 것입니다.
세번째로 우주에 음양상승(陰陽相乘)하는 도에 따라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있어 사람의 행불행이 각자의 심신작용(心身作用)에 따라 짓고 받아서 일체가 마음으로 지어 받는 이치를 깨달아 이 3과정을 거쳐 대각을 이루셨다합니다.
그런데 꿈에 금강경이라 씌어진 책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금강경이란 책이 있는가? 그 책이 유서(儒書)냐? 불서(佛書)냐? 물으셨습니다.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불서인 듯 싶습니다”하니 그러면 그 책을 구해 오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불갑사에 가서 구해 드렸는데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 바를 일찍이 석가모니불이 먼저 알았도다’하시고 탄복하시며 과거성자들의 경전도 열람해보신 다음 ‘과거 옛 성인들이 밝힌 경전도 대충 그 뜻이 적절하여 별로 버릴 것이 없으나 그 중에도 진리의 심천(深淺)이 없지 아니하여 그 근본원리를 밝힌 것으로는 불법이 제일이라’하시고 ‘석가모니불은 진실로 성인들 중에 성인이라’하시며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를 얻은 경로를 돌이켜본다면 은연중 과거 석가모니불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음으로 나의 연원을 석가모니불에 정한다’하시고 ‘장차 회상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 삼아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할 것을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2. 새회상 건설과 그 취지
그리고 나서 새 회상을 건설할 뜻을 가지시고 당시의 사회를 둘러보셨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도덕은 희미해진데다가 서양의 물질문명이 물밀 듯 밀려와 인류도덕은 말살되어가고 물질만능으로 정신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생활에 위협을 받게되고 뿐만 아니라 장차 핵무기와 전쟁무기의 발달로 인류 앞에 큰 위기가 있을 것을 염려하시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아래 정신개벽을 위해 교단을 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과거에 많은 회상을 열었으나 이 회상같이 큰 회상이 없다 하시고 이 회상은 중성공회(衆聖公會)의 회상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원대도의 교법을 내놓으시고 이 법은 천하인류가 다 배워 행해야 할 천하의 대도라 하시고 과거의 회상은 일여래천보살(一如來千菩薩)의 회상이라면 이 일원대도의 회상은 천여래만보살(千如來萬菩薩)의 대회상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이 진리를 깨달아 알고 살아야하는데 대종사님께서 교법의 내용과 방법을 성리로써 밝혀주셔서 누구나 이 법대로 알아 행하면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도록 밝혀주셨습니다.
1) 진리를 깨달아 아는 방법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이 진리만은 꼭 깨달아 알고 살아야 하는데 그 진리를 어떻게 깨달아 알 것인가? 그런데 대종사님께서 깨달으신 그 경험을 통해 누구나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우리의 교법에 그 내용과 방법을 평이하고 쉽게 밝혀 주셨습니다. 진리란 언어와 명상이 돈연히 끊어진 자리로서 그 자리를 무엇으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대종사님께서는 형상할 수 없는 그 진리를 일원상으로 나타내 주시고, 우주의 원리가 되는 그 심오한 진리를 누구나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정전교의편 일원상의 진리장에 밝혀주셨습니다.
진리의 근본 체성에는 언어와 명상이 끊어진 자리로 일체가 공(空)한자리로 밝혀 주시고, 또한 그 없는 자리에서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나타나는 자리를 밝혀주시고 또는 그 변화되는 이치를 진공묘유의 조화는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것이 일원상의 진리라 밝혀주시고 또한 진리를 풀어 아는 공식으로 대소유무를 밝혀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를 풀어 아는데 수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시비이해의 판단 역시 옳은 일엔 나에게 이로움이 돌아오고 그른 일에는 나에게 해가 돌아온다는 시비이해 판단의 기준을 밝혀주셨기 때문에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 일과 이치를 이 공식에 의하여 푼다면 사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아주 수월하게 되었습니다.
2) 진리신앙의 방법
진리를 아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진리의 위력과 감응되는 이치를 알아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조화(造化)는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을 그대로 믿어서 진리와 사실이 부합되는 원만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밝혀주셨으니 이것이 과거의 미신신앙이나 인격신앙과 차원이 다른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진리수행의 방법
진리를 알아 신앙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진리를 바탕으로 그를 본받아 진공묘유 조화의 이치를 체받아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養成)하고 솔성(率性)하여 일원(一圓)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일해서 원만한 불보살의 인격을 갖추어 누구나 견성하여 성불할 수 있도록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알면 진리의 대의를 안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일원상 서원문
일원상 서원문에 다시 총괄적으로 진리를 밝힌 다음 진리를 그대로 체 받아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 사리(事理)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至誠)으로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일하도록까지 서원한다는 서원을 세워 꾸준히 정진하도록 밝혀주셨습니다. 이처럼 자세히 밝혀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를 이용하는데 수월하게 되었습니다.
5) 진리를 깨닫는 표준
그리고 끝으로 일원상법어를 밝혀 어떠한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안 사람인가? 진리를 깨달은 표준을 스스로도 깨닫고 대단치 못한 것을 짐작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깨닫고 깨닫지 못한 평가를 내리는데에도 그 기준이 있어야 되는데 법어에 그 기준을 밝혀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공부하는 표준을 잡는데 아주 수월하게 되었습니다.
1) 시방삼계(十方三界)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인 줄을 알며
2) 우주만유(宇宙萬有)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 알며
3) 제불제성(諸佛諸聖)과 범부중생(凡夫衆生)의 성품(性品)인줄을 알며
4)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이치(理致)가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5)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陰陽相勝)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6) 또는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인 줄을 알리로다.
○안이비설신의 양성 솔성
우리가 진리를 깨닫는데 수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전 삼학, 사리 연구의 목적에 ‘이 세상은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이치로써 건설되고 시비이해(是非利害)의 일로써 운전해가나니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도 한이 없다’하셨으므로 확철대오에 이르기까지는 끊임없는 적공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3. 사은보은
그 다음 이 진리를 깨달아 사은에 보은하는 일입니다. 대종사님게서는 사은에 보은하는 방법으로 천하의 윤리가 되는 원만한 새 도덕을 밝혀주셨습니다. 진리의 체가 되는 사은의 도덕을 밝혀주셨습니다. 진리의 체가 되는 사은의 도덕을 밝혀 천륜과 인륜을 아울러 통하게 하셨는데 천지의 도 여러 가지를 보면 1)지극히 밝은 도 2)지극히 정성한 도 3)지극히 공정한 도 4)순리 자연한 도 5)광대무량한 도 6)영원불멸한 도 7)길흉이 없는 도 8)응용무념(應用無念)하는 도를 밝히고 이 도의 운영에 따라 대덕이 나타남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무자력자 보호의 도와 덕, 동포의 자리이타의 도와 덕, 법률의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는 도와 덕을 아울러 밝혀 천륜이 통하게 하고 인륜이 통하게 하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도리로써 새로운 도덕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이 도덕을 알아 인간생활에 실천하도록 하여 보은감사의 생활을 하게 하고 보은불공의 생활로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의 신앙생활로 진리와 사실이 부합된 신앙과 불공 생활을 하는 동시에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받게 하여 각자 자각에 의한 생활로 행복하게 잘사는 길을 밝혀주셨고 또한 온 인류가 이를 실천함으로써 영원히 다 같이 평화롭게 잘 사는 길을 밝혀주셨습니다.
4. 사요실천으로 평등사회건설
사요(四要)로써 평등사회건설의 방법을 밝혀주셨는데 1)사람사람이 모두 타력(他力)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을 양성하여 정신의 자주력(自主力), 육신의 자활력(自活力), 경제의 자주력을 세우게 하여 인류평등의 사회가 되게 하고 2) 지자(知者)를 주체로 각자가 배워 알아서 지식평등 사회가 되게 하고 3) 타자녀교육으로 자기자녀는 물론이요 여유있는 대로 교육받지 못한 남의 자녀라는 내 자녀와 같이 가르쳐서 교육평등의 사회가 되게 하고 4) 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로 각자 자신도 공도에 투신하여 공도자가 되는 동시에 사회, 국가, 세계적으로 공도자를 숭배하게하여 생활평등의 사회를 이루게 해 누구나 다같이 영원히 평화롭게 잘사는 길을 밝혀주셨습니다.
5. 강자약자 진화의 요법
강자약자(强者弱者) 진화(進化)의 요법을 밝혀 강자는 강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약자는 약자의 도리를 다하여 모두가 강자로 진화되게 하는 동시 나아가 강약의 차별이 없는 평등사회 평등세계를 이루어 다같이 영원히 잘 살 수 있는 법을 새부처님 대종사께서 80여년전에 제시하여 원불교에서 지금까지 이 법으로써 교화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이어온 풍속이 갑자기 고쳐지지 않고 또한 변혁기에 접어들어 인심의 혼란으로 지연되어가고 있으나 멀지않은 장래에 새회상 주세불이신 대종사님을 알게돼 대종사님의 사상과 내놓으신 교법의 진의를 점차로 알게되면 모든 인류가 이 법을 받들어 시행하게 될 것이요, 그리된다면 세상은 나날이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6. 인과보응의 이치와 마음공부
대종사님께서는 앞에 일원대도(一圓大道)를 밝혀 사람이 누구나 이 법을 알아 실천하지 아니하면 인간으로서 떳떳한 생활을 할 수 없고 온 인류가 모두 평화롭게 잘 살 수 없고 또한 이 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로써 밝혀 잘살고 못사는 것이 각자 심신작용 잘하고 못하는데 달려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음을 같이 살고 있건마는 이 마음을 모르고 삽니다. 부부를 일생의 동반자라 하지요, 그러나 인생도 끝까지 동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대부분 모르고 삽니다. 그 마음보신 분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그 모습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 키, 그 몸집, 그 빛깔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우리는 마음공부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 마음은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진리와 같이 무형한 것이라서 보아 알기 어렵고 또한 그 형상을 어떻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분별하는 마음 이것을 마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참마음이 아닙니다. 분별하는 이 마음은 마치 허공에 구름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이 한 생각 일어났다가 사라지면 그만인 것이어서 그것이 참 마음은 아닙니다. 그러면 참마음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해 들어가야 되는데 마음이 한군데로 기울어지는 것을 뜻이라 하지요, 그런데 이 뜻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마음이지요, 마음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정신이지요, 정신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성품이지요 이 성품은 일체 분별이 일어나기 전인데 이것이 우리의 본성자리요 우리의 본래 마음즉 나의 참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무형한 것이어서 그 마음 알기도 어렵고 그 마음 나타내 보일 수도 없습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그 마음보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저 사람 마음은 볼 수 없지만 저 사람이 웃고 울고 찌푸리고 화를 낼 때, 그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무형한 그 마음이 외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외형으로 나타난 그 사람의 인품을 보면 그 사람의 심성을 알 수 있고, 그의 심성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인품은 그 사람 마음의 창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종사님께서 인과보응의 이치를 밝혀 각자의 행 불행이 각자 심신 작용 잘하고 못하는데 있고 각자를 만들어낸 조물주(造物主)역시 어느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요, 각자의 조물주는 각자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형상있는 이 육체는 수명이 한정이 있지만 마음은 생멸이 없고 국한이 없어서 마음공부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넓힐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대중의 얼굴을 보십시오. 똑같은 분 한분도 없습니다. 천인 만인 백만인을 모아놓고 보더라도 혹 비슷한 사람은 있으나 똑같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마음이 각각이요, 익힌 바 습성에 따라 개성이 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지요. 일생동안 심신으로 작용한 일체행동 그것이 종자가 되어 이 생을 마치고 죽어갈 때 무형한 종자가 식(識), 그것이 뭉쳐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떠나게 되는데 이것을 영식, 또는 영혼이라 합니다. 그것이 인연 따라 어느 모태 중에 들어 다시 출생하게 되면 다음 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상벌은 유심(有心)으로 주는 지라 아무리 밝다하여도 틀림이 있으나 천지에서 주는 상벌은 무심(無心)으로 주는 지라 진리를 따라 호리(狐狸)도 틀림없어서 선악간 지은대로 역력히 보응하되 그 진리가 능소능대(能小能大)하여 시방에 두루 통하여 있나니 어찌 그를 속일 수 있으며, 그 보응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지각있는 사람은 사람이 주는 상벌보다 진리가 주는 상벌을 더 크고 중하게 여기나니라.
그러므로 각자의 마음이 들어 각자운명을 만들어 내고 각자 마음이 들어 각자의 인품을 조성하기 때문에 대종사님께서 각자를 만들어낸 조물주는 각자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나 신이 만들어 주며 각자의 운명도 그가 주는 것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모가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에 부모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부모가 자녀를 만들어낸다면 어느 부모가 밉고 못난 자녀를 만들고 싶은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의 마음대로 안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나 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다소 자녀가 부모의 모습을 약간 닮은 것을 보고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식물을 보고 느낀 바가 있습니다. 식물 자라는 것을 보면 똑같은 종자인데 그 종자가 토후(土厚)한 땅에 심어진 식물은 탐스럽고 씩씩하게 잘 자라나지마는 토박(土薄)한 땅에 심어진 식물은 앙상하게 자라남을 보고 각자 수행도 중요하지마는 또한 부모와의 인연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태로부터 받은 부모의 혈육과 사랑으로써 받은 정성, 자력 없을 때 받은 보호와 교훈, 이것이 자녀의 장래에 또한 큰 영향이 미치게 되어 그 모습까지도 다소 닮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은 가운데 두 번째로 부모은이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각자 심신작용으로 조성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셨고 새부처님 대종사께서 마음을 알아 마음공부로 마음 잘 쓰라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대종사님께서 사람의 나이가 40세만 되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갈 때에 바쁜 걸음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생의 보따리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좋은 인물로 태어나려면- 마음공부로 심성수련을 잘해야 한다.
2) 부자가 되어 넉넉하게 살려면- 이생에 복을 많이 지어놓아야 한다.
3) 귀한 인물이 되어 넉넉하게 살려면-많은 것을 배우고 지혜를 닦아야 한다.
4) 좋은 인연 만나 매사 성공하려면 -인연작복으로 선연을 많이 맺어야 한다.
5) 건강장수하려면 -살생않고 호생지덕 많이 베풀어야 한다.
6) 선도(善道)에 계속 진급하려면 좋은 스승 만나 성불하여 제중해야 한다.
7) 생사거래에 자유하려면 -생사의 연마와 해탈 얻어야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잘 살려면 생멸없는 이치를 깨달아 진리를 알아야 하고 인과보응된 이치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이 진리를 확실히 깨달아 안다면 공부하라 말라 할 것이 없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