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하다보면 꼭 듣게 되는 말

5 음식윤리로 살펴보는 종교와 철학(1)

2016-02-10     관리자




김현진: 1970년생, 인간의 삶은 모두 한 우리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야 하고 인종적, 사회적 울타리들은 우리는 좁게 만들뿐이다.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들의 살림을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필자의 꿈이다.


그의 별명은 살림큐레이터이다. 학부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하였지만, 대학원에서는 불교윤리로 석사를, 현재는 불교윤리와 음식학으로 박사과정을 진행 중이다.


방배동에‘(주)마지’라는 오신채가 없는 채식전문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종교, 인종, 문화를 가로지르는 인문학강좌 시리즈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12월 출간된「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의 저자이다.



걸식을 하던 붓다 재세 시에는 수행자가 살생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수행자는 걸식을 하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결 부담감이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재가자는 직접 음식을 해야했기 때문에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생의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필자는 이를“죄책감의 하청구조”라고 표현한다. 이런“죄책감의 하청구조”에서 재가자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열심히 수행자를 봉양하였고, 수행자는 걸식을 하면서 음식을 제공하는 재가자의 복을 빌고, 법을 설해 주었던 것이다.


율장(律藏)에는 재가자가 승단에 대해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승단에서는 회의를 통해‘복발(재가자에게 보시를 받는 발우를 엎는다는 의미)’이라고 해서 그 재가자의 집에서 걸식 하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 있다. 그 당시에 이런 결정은 그 어떤 벌보다도 무서운 형벌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수행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살생의 죄책감을 덜 수도 없고, 수행자가 자신을 위한 기도나 법을 설해 주지 않으니,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벌이 아니었겠는가?


이러한 수행자와 재가자의 “죄책감의 하청구조”관계가 달라진 것은 승단에 부엌시설이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이제 스스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출가자에게 음식을 만들기 위한 살생의 죄책감은 출가자에게 직접 관련된 일이 되었고, 이때부터 풀에는 불성이 없어서 먹어도 된다는 규정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풀에도 자기 보호능력이 있다. 우리가 풀을 꺾으면, 풀은 자신을 보호하는 물질을 내뿜는다.따라서 야채를 생으로 먹는 것이 체질에 따라서는 몸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학계의 연구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전통 한식에서는 생야채를 그냥 먹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렇게 풀에 생명보호 능력이 탑재되어있는 걸 보면, 풀도 자기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데, 풀이 덜 아프니 동물이 덜 아프니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하는 역설적 존재이다. 우리는 이러한 역설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의 먹이가 되어주는 생명에게 감사하고, 다른 생명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금 덜 먹고, 먹을 때 음식을 남기지 않는 완전 순환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한번은 채식을 한다든가, 소식하며 남기지 않는 발우공양을 한다든가 혹은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나누는 밥상 등의 실천을 고려해 볼만 하다.



그리고 오늘날 마트에서 파는 모든 고기들은 붓다가 허가했던 삼취정육(먹을 수 있는 고기로 그 생명을 1.죽이는걸 직접보지 않았고 2.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3.본인을 위해 살생되었다고 여겨지지 않아야 한다)에 준하는 고기이지만 공장식 축산업으로 키워진 고기가 몸에 좋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조금씩 줄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먹는 것이 바로 너다.”라는 말은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과학의 힘을 빌려도 설명이 가능하다. 후성유전학의 입장에서는 후천적으로 유전되는 환경적 요인의 70%가 섭생에 있다고 한다. 음식은 몸을 구성하고 몸은 의식을 규정한다.


당신은 건전한 사회와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것을 먹고 있는지 밥상 위를 한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