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안이 만난사람┃서둘러, 잊지 않습니다

2019-01-13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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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잊지 않습니다』는 저자 김도경 교도(서울교당)가 소중한 이를 잃은 상실감을 애도의 과정을 통해 정직하게 통과하며 회복하고, 천천히 성장하며 삶을 이어가는 라이트 애도 에세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든 만날 수밖에 없는 상실감과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온당한 애도의 감정을 '그러하다고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가까스로 세우고, 삶을 이어온 이야기다. 애도의 감정을 서둘러 봉인하지 말고, 상실을 인정하고 내면으로부터 서서히 회복해 나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41개의 짧은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매우 높은 수준이다. 국가적으로 자살 예방을 위한 노력이 뒤따르고 있지만, 아무 예고 없이 가족을, 친구를, 지인을 잃고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살유가족'을 위한 뾰족한 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자살의 예방이 매우 중요하지만, 소중한 이를 상실하고 이차적 아픔을 겪는 남겨진 이들의 삶도 국가와 사회가 그냥 내버려 두고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인 김교도는 동생의 자살 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자살유가족'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또 다른 삶 속에서 저자는 되묻기 시작했다. '왜 그 많은 사람은 슬픔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살까?', '왜 그들은 그저 잊으려고만 할까?'라고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 속에서 '그 흔한 사람들' 중의 한사람으로 살아가는 저자가 매체에 연재하고 인문강연으로 풀어냈던 글 일부를 다시 매만지고 시사적 이슈를 추가하여 조금은 다른 애도 과정을 담은 흔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인생의 소용돌이를 회피하지 않고 삶을 소중하게 이어온 이야기인 것이다.


'세월이지나면잊힌다', '잊어야 산다', '죽은 사람은 잊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우리 주위의 흔한 애도와 위로의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특히 소중했던 사람을 강제로 잊는다는 건 쉽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잊은 듯해도 어느 날 갑자기 밀려오는 기억과 아픔은 신이 아니고서는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고 다양한 방식의 장례식, 묘지, 그리고 제의 문화를 수 천년 이상 이어 왔다. 오히려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게 인류의 바람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금기에 가깝게 몰린 자살은 강제적 잊음을 그리고 빨리 잊힘을 강요받아온 건 아닐까. 저자는 그렇게 끝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답을 찾았다.


“슬픔에는 끝이 없고, 사랑에도 끝이 없기 때문임을 이제 알았기 때문입니다. 슬픔의 진행 과정은 예측 불가능하죠. 몇 주, 몇 달, 몇 년이 지나든 시간은 무의미합니다. 마치 어제의 일처럼 슬픔이 들이닥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바삐 서둘러, 잊으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둘러, 잊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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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선물을 건네곤 한다. 가끔은 위로할 때도 선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는 선물 받을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저자는 할 말을 다 못한 채 숨겨왔던 심정, 억눌렸던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기적 주체였던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한다. 바로 그것은 혼자만의 애도에서 모두의 애도로 확산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존엄함을 실행하는 다짐이다. 그렇게 저자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시간의 선물을 선사하고자 한다.


“내 아픔만 생각한 이기적 슬픔의 시간을 반성하며 살아가 볼게. 네게 못 주었던 시간의 틈, 삶의 틈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