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한울안칼럼

2020-07-08     이여진 교도

“나라에서 공돈을 준다는 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나중에 어차피 우리가 세금으로 다 내야 하잖아요. 그래서 반대합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이하 지원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지만,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생기를 잃은 지역 상권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비용 대비 실물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회의적인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지원금 지급에 대한 정책효과를 평가하기도 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2차 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에서는 3·4차 지원금 지급까지 거론하고 있다. 지원금의 재원 조달은 국채 발행 형식의 부채이다.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 GDP 대비 110%인데, 우리는 40%밖에 되지 않으니 아직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또 수요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하기에 지원금 정책은 빈곤층을 도와주는 복지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프랑스 경제 철학자 앙드로 고르로(Andre Gorz, 1923~2007)가 제시한 기본소득제도 거론하고 있다. 이는 재산·소득·고용 여부 및 노동 의지와 무관하게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로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별적 복지에 비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강점에 있다. 반면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국민의 조세 부담이 높아지고, 노동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미 스위스나 핀란드에서 실패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다시 지원금이 지급된다면, 전 국민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취약한 일부 계층을 대상으로 선택적·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재정 사정을 고려한다면 기본소득제가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 계층들에 대한 지원과 전 국민 건강보험제,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공짜로 지원금을 받고 보니 좋기도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나랏돈을 이렇게 퍼주다가 나중에 이를 보전하려고 세금을 왕창 부과하고 그래서 대다수의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팍팍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도 물론 있겠지만 국가채무의 증가로 우리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해질까 염려스럽다. 최근 우리의 행태를 예의주시하는 외국 신용평가사 등의 발 빠른 움직임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지급된 지원금의 정책효과를 면밀히 따져보고 국가채무가 가져올 우려도 함께 짚어 보면서 향후 정책방향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협의해야 할 것이다.

곳간의 열쇠는 여당과 정부가 쥐고 있을지 모르나 곳간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혹시라도 눈먼 나랏돈이라는 생각에 차기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으려는 얄팍한 심보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지원금 정책이라면 말이다. 또한 곳간의 주인인 우리 국민들도 혹여 생색은 곳간지기가 내고 나중에 빚만 떠안는 한심한 백성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준엄한 시선으로 살펴야 한다.

곳간지기가 제대로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함부로 곳간의 자물통을 열고 제 것인 양 이리저리 내어주고 쓰는지를 말이다.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일단은 내어주었으나 믿음이 가지 않을 때에는 언제라도 다시 뺏어올 수 있는 시어머니 심정으로 냉철하게 지켜봐야만 한다.

한울안칼럼이여진

 

7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