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별이 된 내 편~

세타원 배은종(世陀圓 裵恩宗) 대봉도 영전에

2020-12-03     김성주 교무


살면서 내 편 하나쯤은 욕심이 아니겠지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 주는 그런 분이 계셨습니다. 

늘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자신의 몸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시던...

그런 눈 맑고 순수한 내 편이 별이 되어 버렸네요.

마지막 인사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세타원님, 저 이제 가야해요”

“왜, 벌써 가려고...”

“일이 있어요.”

“그럼, 가야지. 교무는 공사하는 사람이니...”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시던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 까만 밤하늘에 어떤 별로 떠 있는지요?

그 별 찾아 밤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하이 하늘은 너무도 밝았네요.

아무리 올려봐도 별을 찾을 수 없어서 터벅터벅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른 새벽... 눈이 뜨였습니다.

거실에 밀고 들어오는 달빛이 좋아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조금 일그러진 달님은 그럼에도 시리도록 환하더군요.

그 속에 해맑게 웃고 있는 내 편이 있었습니다.

이젠 저 기울어진 달을 볼 때 마다 내 편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인연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셨던 세타원님~

당신은 언제나 제 마음 속의 별입니다.

갔다 오는 길도 별처럼 반짝반짝 빛 나시길 또 하나의 당신 편이 축원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세타원님을 보내는 날, 저는 그렇게 당신을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11시가 되면 추모독경을 올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요.

제가 당신을 만난 것은 진선교무 인연이었지요.

더 가까이에서 뵐 수 있었던 것은 5년 전 당신이 병고를 얻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저도 일찍 양친을 보낸 격이라 마땅히 의지처가 없다 보니 넉넉한 동창에게 의지하게 되더군요.

그때 당신을 종종 뵙게 되었지요.

병원을 같이 가기도 하고, 식사도 같이하며 말벗이 되어 드린 것이 우리의 인연이었습니다.

올해 코로나로 우연찮게 들어와 오래 머물게 되면서 당신과의 추억이 깊어져 버렸습니다.

3월 초쯤이었지요? 병원을 다녀와 광명역까지 모셔다 드린 일이 있습니다.

거동이 조금 불편하셔서 모셔다 드린다 했지요.

“혼자가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그대들을 힘들게 한다” 하시던...

그러면서 제게 “그대는 아무 신경 쓰지 말고 운전만 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게 자력으로 어떻게든 해 보시려 하셨지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 해도 그러지 말라며 한사코 사양하셔서 들어가는 입구에 내려드리고 인사를 했습니다.

네비에 돌아오는 길을 찍고 주변을 살펴보니 그때까지도 서 계셨지요.

그리고 어서 가라고 손짓하시던...

그 모습은 하나의 화폭이 되어 제 가슴에 새겨져 버렸습니다.

‘배려’와 ‘자력’과 ‘해탈’이라는 세 단어를 당신의 모습에서 읽었으니까요.

이젠 이 세 단어가 저의 공부 표준이 되었답니다.

세타원님, 병상에 계실 때 더 많이 모시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와 버린 후진은 임종도 지키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자식이란 이름표와 후진이란 이름표는 늘 후회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저희들의 현실이고요.

제게 온 몸으로 ‘교무의 삶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신 그 교훈 가슴에 새기며

저 또한 오롯이 공부하고 교화하며 나아가겠습니다.

그동안 병고로 지치셨을 심신, 법계에서 잠시 쉬셨다가 어서 저희들 곁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말입니다.

두 손 모두옵고 기다리겠습니다.

세타원님,

세타원님,

잘 다녀오십시오.~~~

 

상해 황포강변에서 성주 올림

 

세타원 배은종 대봉도는 원기66년 원광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일본교구 관동교당(현 요코하마교당), 영산원불교대학교(현 영산선학대학교), 국제부, 원광여자고등학교, 학교법인 원창학원, 겸면교당(현 옥과교당), 곡성교당, 일본교구 교구장 겸 동경교당 교감, 영산성지고등학교, 영산여자원로수도원 교무로 봉직하다 원기105년 정년퇴임 했다. 퇴임 후 정양에 힘쓰다 몸의 병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수는 65세, 법랍 45년 7개월의 무아봉공의 삶을 살다 10월 4일 열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