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選好와 시비是非

한울안칼럼

2021-11-09     이여진 교도
이여진

“어쩜, 너 학교 때랑 정말 똑같다. 하나도 안 변했어”.

음식점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나이가 지긋한 아줌마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인가보다. 반백이 넘었는데도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재잘재잘 떠드는 오래된 여고 동창생들의 수다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 바로 예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말.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눈 밑 잔주름이 자글자글하건만 30년 전 학교 때랑 똑같다고 말하니 듣는 주위 사람들은 좀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녀들은 서로들 웃음을 주고받으며 호호 깔깔 즐겁다. 흘러간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만의 개성 있는 외모가 뚜렷하게 아직 남아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것 말고도 변하지 않는 것은 또 있다. 주로 나서서 말하는 것을 즐기는 친구, 턱을 괴고 응시하면서 조용히 듣는 친구, 남의 말을 가로막고 중간에 끼어들어 아울러 말하는 친구, 그 친구는 이제 나이가 들어 해야 할 말을 금방 까먹는 건망증 때문에, 할 말이 생각났을 때 그 즉시 말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며 남의 말을 비집고 훅 들어온다.

그런데 말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남의 뒷담화를 하거나 흉을 보는 것도 참 변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화장실에 다녀올 때면 예외 없이 그 자리에 없는 사람 흉을 볼지도 모르니 용변을 참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던가.

“쟤는 이마에 보톡스를 맞았나 봐?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 아냐. 왜 저런다니”.

“핸드백 또 샀네. 핸드백 수집이 취미냐? 아예 사려면 하나를 사도 명품을 사야지”.

사실 동창이라 해도 학교 때에는 비슷비슷했지만 졸업 이후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삶의 경험에서 생겨난 격차로 인해 지난 세월의 간격은 잘 메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는 동창회에서는 서로 간에 마음의 생채기가 생겨날 수 있다. 성장 배경, 집안 문화, 생활 환경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타인과 내가 같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나와 다른 상대방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흔히 나를 기준 삼아 상대가 잘못되었다는 가정하에 그를 폄하해서 말하거나 더 나아가 그를 이상한 사람, 심지어 나쁜 사람으로까지 모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보톡스를 맞지 않았고 핸드백을 자주 사지 않은 것이 마치 대단한 도덕적 우월성을 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푹 꺼진 볼살, 깊이 팬 주름이 싫어서 보톡스를 맞았을 뿐인데. 좋은 옷을 사자니 너무 비싸고 명품 가방을 사자니, 그것도 여의치 않아 그나마 가격이 만만한 가방을 몇 개 구매해서 옷 색깔에 맞추어 코디를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 만난다니 기분 좋게 뽐내고 나온 것뿐인데. 친구들한테서 듣는 핀잔이나 뒷담화가 다시 돌고 돌아서 들려온다면 좋아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알고 보면 단지 선호일 뿐이다. 외모 시술이나 명품에 대한 개인적 선호일 뿐 그것이 옳고 그른 일은 아니다. 선호(選好)란 여럿 가운데 가려서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뜻하고, 시비(是非)는 옳고 그름을 의미한다. 그러니 선호는 주관적인 호불호를 반영하고 있고, 시비는 객관적인 법과 원칙이 그 기준이 되므로 양자는 엄연히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둘을 적당히 섞어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니 당연히 사람들 간에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나의 선호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호와 시비를 구분하고 자신의 선호가 시비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