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희타원 안혜연 금천교당 교무

2023-10-04     한울안신문

이맘 때 쯤이면, 잠에서 깨 방문을 열면 어느새 알밤이 가득한 비닐 푸대를 지고 대문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바짓단은 이슬에 젖어 축축해져 있었다. 농기구가 있고 갈무리 덜 된 곡식이나 땅과 나무에서 얻은 갖가지 수확물들의 임시거처였던 곳을 우리는 ‘광’이라 불렀다. 아침마다 아버지가 주워 온 알밤 역시 이‘광’에 잠시 머물렀다가 자식들에게 보내졌다. 나에게 알밤은 가을이면 당연하게 먹을 수 있는 흔한 간식이었다.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갔을 때, 주변의 밤나무에서 가시옷을 입은채 떨어진 알밤들이 눈에 띄었다. 
벌어진 가시 사이로 보이는 반질 반질한 밤색의 귀한 알밤들... , 더 이상 알밤과 우리를 이어주던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그 허전함. ‘아버지 덕분에 토실 토실한 귀한 알밤이 자식들에게 흔하고 당연한 가을 간식이 될 수 있었구나... ’ 
결실의 계절이라고 한다. 알밤뿐 아니라 각종 햇과일과 햇곡식등이 우리 앞에 놓인다. 그 결실들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은혜와 인연들이 얽히고 설키어 있을까를 생각한다. 얼마나 다양한 마음들이 스며 있을까를 생각한다. 
모든 것이 예전에 비해 풍요로워 졌다. 그 풍요로움이 때로는 우리 앞에 놓인 은혜의 결실에 대한 고마움을 희석 시킨다. 지금보다 가난했던 시절, 마음이 가난하지 않을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가진 작은것들 하나 하나가 모두 귀하고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온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것은, 그것을 가지지 못했던 결핍의 시간들이 주는 은혜이다. 
결실의 계절 가을의 느낌이란 풍요로움과 수확의 기쁨이 제격일 듯 한데 내가 느끼는 가을의 느낌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난 싸늘한 찬바람에서 느껴지는 스산함과 쓸쓸한 느낌이 좋다. 떨어지는 낙옆에 공연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고,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마음만은 청춘이라 아직도 가을이면 공연히 들썩이는 이런 온갖 감정들이 좋다. ‘주책인가?’
하지만 모든 것이 진리의 작용이라 하셨다. 알밤 한알에서 시작된 고마움과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주홍빛 노을을 보며 향수에 젖고... , 가을을 타는 이 마음 또한, 천지와 어우러진 법신불 사은님의 기막힌 작용인 것을…. 누가 주책이라 할수 있으랴. 
교무이니, “가을은 결실의 계절~”, 뭐 이런 교무스러운 말로, “공부의 결실을 얻자” 라고 마무리를 하고 싶다. 그런데 당당하게 큰소리로 “난 이런 결실을 얻었다!” 라고 큰소릴 칠 자신이 없어 주절 주절 가을 단상을 풀어놓고 보니 민망하다.  
그래도, 잊었던 고마움들이 다시 곱게 마음을 물들이고, 모든 것이 소소영령한 진리의 작용이라는 감각이 가슴에서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10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