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마음 공부] 55.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지하감지위, 자연이 말없이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 박선국 돈암 교당 교도/ 문화평론가
영화줄거리
타쿠미는 숲 속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다. 3대에 걸친 이 곳에서의 삶이지만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새정착민을 위해 물을 길어다 주고 나무를 자르는 일이 전부이다. 그러다 가끔 딸의 하교시간을 잊어버리곤 한다. 어느 날 도시의 한 회사가 마을에 글램핑장을 만들 계획으로 설명회를 열게 된다. 거기에 참석한 타쿠미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게 되고 거기에 호감을 느낀 회사 사람들이 그에게 관리인을 맡아 주기를 원하게 된다.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연의 보존과 개발을 둘러싼 집단들의 갈등과 거기에 관련된 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서로 얽히며 단지 선악이란 확고한 것이 아닌 환경과 조건에 따라 바뀌어지고 다르게 규정됨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인물의 감정과 느낌을 인물 간의 대사가 아닌 아주 긴 롱 테이크의 화면 구성과 불협화음 같이 느껴지는 음악 등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말없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 같다.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은 숲을 비춘다. 영화의 시작은 낮에 숲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며 영화의 끝은 동일하게 밤의 숲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 맺는다.
이 두 장면은 그러나 상반된 의미를 지닌다. 한 낮의 고요하며 조용한 숲과 한 밤중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숲은 밝음과 어둠,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등의 이분법적 해석이 가능하겠다. 인간의 시선에서의 해석일 뿐 자연의 시선에서는 그저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에 불과하다. 그것은 또다른 시작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가장 의미심장한 장면은 다친 사슴과 인간이 대면할 때이다. 인간의 시선으로는 해석하기 쉽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남자는 다친 사슴을 도우려 다가가는 아이를 저지하려 하고 아이의 아버지는 그런 남자를 적극적으로 막다가 거의 죽이기 직전까지 간다. 부자연스러운 이 장면은 자연의 시선으로 보면 모두 인과보응의 이치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류로 규정되는 회사개발자들과 하류로 규정되는 산골 사람들 모두 자연의 입장에서는 그저 욕심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천지의 은혜를 생각한다. 천지는 사(私) 없이 우리에게 베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의 판단으로 좋고 나쁨으로 구별하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6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