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의 생활 속 마음 일기 15. 손자들의 싸움
유산 박영호 중곡교당 교도
손자들의 싸움
나는 아들만 하나 있는데 그 아들이 고맙게도 사내아이 둘을 낳았다.
4년 전 출산휴가를 마친 며느리가 재취업하여 직장에 나가고 손주들은 안사돈과 우리가 1주일씩 번갈아 돌보고 있는데 어린이집이 멀어 운전을 해서 등하원시켜야하므로 내가 전적으로 맡아 하게 되어 난 노후의 자유를 포기하고 날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이번 주는 안사돈이 돌보는 기간이지만 할아버지를 워낙 좋아하는 큰 손자가 할아버지가 바로 가시면 서운하다고 붙잡아서 30분정도 아들집에 더 머물러 있곤 한다.
그때 있었던 일이다. 형이 동생 장난감을 만지자 동생이 내 거라고 빼앗으며 싸움이 벌어졌다. 형은 동생이 안 가지고 놀 때 좀 가지고 놀려고 하는데 동생이 자기 것이라고 못 가지게 하자 안 주려하고, 동생은 제 것이라며 악착같이 빼앗으려고 악을 쓰며 덤비는데 온 집안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문제는 외할머니가 자기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 외할머니가 계실 때는 기고만장 안하무인으로 큰 소리 치고 형을 기죽게 한다. 순한 형이 마치 의붓자식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지만 지금은 안사돈이 주책임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기 때문에 침묵으로 앉아 있다가 큰 아이를 안고 안방침대로 데리고 가서 다독거리고 안아주며 위로를 했다. 3일만 있으면 울산할머니가 내려가시고 할아버지가 돌보는 기간이 오니까 그 때까지만 참자고 안심을 시켰다. 완력으로 하면 형이 힘이 더 세기 때문에 안 뺏기겠지만 마음약한 형은 양보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풀죽어 있다.
나는 아들 하나만 낳아 키워서 형제가 싸우는 모습을 본 일이 없었으므로 형제가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자 미래가 걱정되고 카인과 아벨의 일까지 떠올랐다.
형에게 사생결단으로 덤비는 동생에게 미움과 분노가 치솟았다. 우리 집안은 부모님 형제나 우리 형제 모두 우애를 금쪽같이 생각하고 화목하게 살고 있는데 몹쓸 욕심쟁이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더 걱정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상황을 얘기하고 작은 손자가 정떨어진다고 하소연하자 집사람이 어린이집 등하원 시키는 시간에 동생에게 알아듣도록 훈계를 하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말을 듣고 아침 내내 화내지 않고 알아듣게 어떻게 훈계할 것인지 연마했다. 원래 내 것은 내가 돈 벌어서 산 것이 내 것이지 엄마 아빠가 사 준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공동의 것임을 주지시키고 상하의 위계질서를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집안의 아름다운 가풍인 형제간의 우애를 반복해서 가르치며 형제가 싸우고 동생이 형을 거역할 때는 가혹한 벌이 따를 것임도 따끔하게 경고하기로 했다.
어제는 며느리가 다음 주에 홍익대에서 산업디자인 관련 중요한 발표가 있어 그 준비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아들이 애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낮에 고대 통일산악회 시산제가 있어서 인왕산에 가서 시산제를 23명이 지내는데 각자 종교가 다를텐데 모두 산신령님께 잔을 올리고 삼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의 정신적 뿌리는 토템신앙과 유교라는 생각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 왔더니 작은 손자와 큰 손자가 장난치며 놀다가 큰 애 팔을 물어서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큰 애가 물릴 때는 엄청 아파서 소리도 못 칠 정도로 아팠다고 하며 동생을 개라고 호칭한다. 지금까지 4번을 물었다며 한 번은 실수로, 두 번은 바보, 세 번은 멍청이 바보, 네 번은 짐승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동생을 때리지 않는 게 기특하다. 동생은 놀면서 힘으로는 형을 이길 수 없으니 깡으로 대항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금방 풀어져서 쫓고 쫓기며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이를 본 우리 아들이 둘이 노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나는 어렸을 때 저렇게 재미있게 놀아본 적이 없다”고 하며 좋아라고 한다.
그렇다. 혼자 큰 우리 아들은 저렇게 재미있게 놀아본 적도 없고 뭐든 독차지하며 큰 어려움이 없이 크다 보니 역경에 대한 적응력이 없어서 대학 때 큰 슬럼프를 겪었다. 우리 손자들은 형제가 어울려 크면서 경쟁과 양보와 배려를 배우고, 역경을 이기는 법을 배울 것이다. 모든 게 은생어해다.
7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