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헌신

지산 오인원 강남지구장

2024-09-11     한울안신문

문화는 세련이라는 정점을 향해 가는 살아있는 생물 같다. 모든 생물은 저마다 최선으로 매순간 목표에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여 간다. 그러나 사람은 순간만의 목적을 넘어 큰 이익을 위해 상당한 어려움을 견디면서 ‘장기적 관계’들을 엮어, 도움을 주고받는다. 전문적 노력과 투자를 기꺼이 하였으며 그 결과 인류의 큰 자산이 되었다. 문명사회일수록 ‘관계’에 특별한 능력과 다양한 ‘노하우’들을 축적하고 있다.
관계 지향적인, 만남에 세련된 사람을 만날수록 점점 ‘관계 능력’이 성장하고 현란해진다. 상대를 존중하고, 쓸데없이 감정을 건드릴, 해를 끼칠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알아간다. 만남의 중첩은 관계의 미려함을 계속 성장시킨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처럼 관계 능력도 서울이 주는 중요 혜택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관계’는 사람을 힘겹게 하며 복잡한 행태가 행복을 위축시키기도 한다. 관계만 중시함이 자칫 순수와 본질을 잃게 해 폭망할 수도 있다. 
또 유려함을 상대의 능력으로 오인하거나 과잉 평가로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서울살이로 ‘고급 관계’에 중독되면 매너와 우아함에 젖어 정작 사람에 대한 안목이 어두워지고 투박한 실속이 불편하여 거친 사람을 여지없이 평가절하해 버리는 함정도 있다.
개인 간 ‘관계 전문가’뿐 아니라 ‘조직 속 생존전문가’들도 보인다. 실질 성장이나 은혜 생산의 경력도 능력도 없고, 실행의 길도 할 사람도 없는 데스크 위 목표를 띄우며, 유사 어젠다로 길을 흐리고, 부드러운 매너로 대중들에게 좋은 평을 잘도 받는다. 여기만 집중하여 필요를 손쉽게 취하는 ‘관계 기생충’들도 자란다. 조직을 말리는 큰 악이다. 
사람을 아끼고, 숨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밀려나고 부족해진다. 오래 전부터 봉공, 여성, 청운회도 사람이 없어 애가 탄다. 소소한 구석까지 실질적인 손이 아쉽다. 
지도자의 중요한 실력은 이것을 골라내고 교도들이 이런 차이에 눈뜨게 하는 것이다. 
실질에 간절하고 어려움에 반응하는 순수, 소리 없이 화합에 나서는 사람, 오늘도 가슴 속에 법으로 인도할 한 명의 인연을 품고 있는 사람, 그런 교화 성장의 주인이 필요하다.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