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평양 . 백두산을 다녀와서 2
5 2008년 북한 방문기, 이덕천(평화의친구들 이사)
제 3일 : 백만년을 이어온 백두산 천지, 민족의 영산
아침 일찍 순안공항에서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고 백두산을 향했다. 삼지연공항에서 두 시간을 버스로 가니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봉우리가 나타났고, 너무도 맑은 날씨 속에 신령스러운 천지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우리들에게 보여줬다.
민족생활의학회의 장두석 회장님은 단군영정을 놓고 천제를 지냈고, 진관스님은 걸어서 올라가는 (약 1킬로 미터) 내내 목탁을 치면서 조국통일과 참여자들의 성공을 빌어주었다. 안내원들은 중국 쪽에서 보는 천지의 경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이며, 이렇게 맑은 날씨와 탁트인 전망으로 천지의 경치를 볼 수 있는 날은 일년에 며칠 안 된다면서 우리들에게 복이 많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람들이 워낙 넋을 놓고 즐거워하여 나중에는 불러모아 내려가는 데에 애를 먹을 정도로 백두산 천지는 우리들에게 기쁨과 행복감을 주었다. 아, 대자연은 이렇게 늠름하고 맑은데, 사람들은 왜 이리 혼탁하고 비굴할까.
저녁 환송만찬에서 방북단의 권영길대표와 북측의 민화협 대표는 함께 조국통일의 발걸음을 힘차게 이어나가기를 약속했다.
제 4일 : 양묘장 건설현장 참관, 식수행사
아침에 평양 삼석구역에 있는 겨레하나에서 지원하여 건설하고 있는 양묘장 건설현장을 참관했다.‘우리겨레푸른숲’ 양묘장은 넓이가 총 9헥타아르에 이르며 주로 북녘의 조건에 맞는 이깔나무, 전나무 등을 키워서 전국에 보급한다고 한다. 단체촬영과 함께 기념식수를 하였고, 이번 일백 명의 방문단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참가한(19명) 경남의 겨레하나 소속 참가자들도 따로이 단체기념촬영을 하였다.
이어서 평양시내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을 참관하였는데, 짐작대로 중앙력사박물관은 고조선, 고구려, 고려 등의 역사는 전시물과 설명이 많았으나, 특히 이조시대는 전시관도 적고 내용도 적었다. 점심식사를 유명한 평양단고기(개고기)집에서 하고 그 동안 친밀했던 안내원들과 개별사진들을 찍으며 이별을 아쉬워했고, 순안공항을 통해 대한항공기를 타고 서울 김포공항으로 돌아온 것으로 이번 방북일정은 끝났다.
느낀 점 : 몰려오는 중국,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이번 방북에서 특히 느낀 점을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평양의 거리가 평온하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과 2007년의 방북 때와 별 달라진 것 없이 평양의 거리는 평온했고, 주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있다면 옷차림의 색깔이 더 다양해졌고, 밤에 건물의 불빛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중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 중에는 교복과 구두, 양말 등을 맵시있게 차려입은 아이들도 보였다.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 등으로 호들갑을 떠는 남쪽에서의 억측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둘째는 크게 변화된 모습이 있는데, 중국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양각도 호텔의 식당, 기념품 매장 등에서 우리 남쪽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중국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호텔 객실 안에 있는 TV의 채널도 절반 이상이 중국방송이고 북쪽의 방송은 1개, 영국, 일본 한두 개씩이라 중국관관객 위주로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매대(상점)에는 중국관광객들을 의식한 중국글로 된 안내문, 책자, 시디 들이 즐비했다. 이들은 사업가들도 있지만 최근 북쪽이 중국의 단체관광을 허용한 뒤로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대량의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대외교역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최근에는 지하자원의 개발 등에 재빠르게 진출하고 있는 중국은 우리가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 발길을 멈추고 있는 동안 북쪽으로 몰려오고, 차지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중국의 진출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북녘 산림의 피폐함이다. 북녘은 평양, 묘향산, 칠보산 등의 주요지역과 관광지역에서는 산림을 잘 가꾸어 놓은 편이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평양 외곽을 벗어나서 보는 산들의 모습은 심각하게 헐벗어서 홍수와 토양유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가뜩이나 식량난이 심한데다가 홍수가 나서 더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을 우리는 같은 겨레로서 어떻게 보고 있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다. 북쪽의 민화협에서 겨레하나 등 남쪽의 지원단체에게 산림녹화를 위한 양묘장 건설 지원을 중점적으로 요청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로 보인다.
넷째는 북녘의 시가지 건물에 걸려있는 구호 이야기이다. 남쪽의 시각으로는 그런 정치성 구호에 싫증을 내겠지만, 북쪽은 나름의 생활양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어디에서든 끝장을 낼 것이다.’
위의 구호는 건물 등에 많이 있지는 않지만 평양 중심부에 사람들이 잘 보이는 위치에 게시되어 있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자존심을 중시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구호이다.
그래서, “당신들 얼마나 못사니. 그런데, 우리 말만 잘 들으면 너희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 줄께. 우린 부자야, 2만달러거든”이라는 식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어리석고 오만한 발상인지를 이 구호는 시사해주고 있다.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겸허해야 하지만 특히 집단, 정부 사이 등 명분을 세우는 관계에서는 더욱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서 상대를 대해야 할 것임을 현실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