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 방북기
정인성 교구사무국장
2002-03-08 전
북측 허혁필 단장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2월 26일부터 28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2002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은 다른 어느 때의 민간교류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행사였다.
지난해 8.15축전 이후 중단된 대규모 남북 민간교류의 첫 시도임과 동시에, 미국 부시대통령의 이른바 ‘악의축’ 발언 이후 급격히 경색된 남북관계를 민간차원에서부터 풀어 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호재임에 틀림없었으나 결과적으로 무산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갑작스런 방북불허로 무거운 출발
‘2002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은 종교단체, 민화협, 통일연대등 3개 연합단체가 축이 되어 북측의 민화협과 추진한 대규모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행사였다.
26일 6시30분 출발지를 향해 가는 택시 안에서 불길한 뉴스를 접했다. 통일부가 46명의 방북을 불허한 사실과 그 대부분이 통일연대 소속이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복궁 주차장에서는 각 단체의 실무자들이 모여 긴급대책을 숙의하고 있었고 가끔씩 고성이 들려왔다. 결국 통일연대는 불참을 종단과 민화협은 올해 첫 민간교류의 성사를 위해 참여를 결정하고 8시경에 속초를 향해 출발했다. 배 안에서도 걱정은 여전했다. ‘통일연대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과연 북측 대표단이 마중을 나올 것이며 또한 행사가 성사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모두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 있었다.
북측 대표의 장전항 영접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26일 오후 7시 30분, 민화협과 종단만의 남측대표단을 태운 설봉호가 장전항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참가자들은 북측의 입장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행사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후 8시40분경 하선하는 남측 참가단을 영접나온 허혁필 북측 민화협 부회장 등 실무단 5명을 보고 모임 성사의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먼저 실무선발진으로 와있는 남측 실무단이 행사직전 남북공동으로 남한 정부에 대해 방북불허에 대한 엄중항의 후 행사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다음날 행사를 기대하며 온정각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첫날 일정을 마쳤다.
행사의 무산
둘째날 남측 참가단 일행이 온정각으로 이동하여 행사를 기다렸으나 행사 1시간 전인데도 북측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행사 무산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높아갔다.
북측 참가자들과 함께 하기로 했던 점심시간을 넘긴 12시30분경. 온정각을 찾아온 북측 실무자들은 ‘고생하셨습니다’란 말과 함께 북측의 입장을 실은 성명서를 전했다.
이어서 ‘통일연대가 배제된 절름발이 대회를 진행시킬 수 없다’는 북측 공식입장을 민화협 조성우 집행위원장이 전하고 북측 성명서를 읽어 내려갔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대규모 남북민간교류가 처음으로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북측의 성명서를 접한 남측 대표단은 즉각 회의를 열어 행사무산에 대해 남북한 당국 모두의 책임을 묻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종단과 민화협이 각각 모임을 가진 후 향후 일정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온정각 앞뜰에서 가진 종단측 모임에서는 신계사 절터를 방문하겠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었으나 관광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며 대다수가 반대를 하였고 대신 28일에 해금강에서 7대 종단 합동기도식과 온겨레손잡기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
해금강에서 가진 통일기원식
28일 오전 참가자들은 북의 참가자들과 손에 손을 잡고 거닐기로 예정했던 해금강으로 향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7대 종단이 차례로 통일을 위한 기도문을 낭독했고 원불교에서는 김일상 교화훈련부장이 기도문을 읽었다.
모두가 숙연한 가운데 기원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이어서 온겨레 손잡기에 들어갔다. 비록 남측 참가자들 만의 손잡기였지만 통일에 대한 갈망과 열기는 가득했다. 함께 부른 ‘아리랑’과 북측 가요 ‘한라에서 백두로’를 목청껏 부르며 손에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한편 이 시간 온정각에서 허혁필등 5명의 북측 실무단과 남측 실무단의 대화가 있었고 서로가 ‘행사무산에 대한 아쉬움’을 나누고 ‘3월 중순에 실무회담에 대해 논의해보기’고 했다고 한다.
북측 대표단의 배웅
아쉬움을 안은 남측 참가자들이 절반쯤 세관을 빠져나갈 즈음 북측의 허혁필 부회장이 세관으로 와 남측 참가단을 배웅했고 남측의 종단과 민화협 대표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성사가 안돼서 안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허 부회장은 남측 참가단을 향해 “안녕히 가십시오. 다시 만납시다”라는 큰소리와 함께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하므로서 향후 민간교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남측 참가자들은 2002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에 대한 많은 기대와 아쉬움을 안은 채 오후 2시 30분경 장전항을 출발했다.
폭 넓고 다양한 연대활동의 강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남북의 대규모 민간교류는 종교단체, 민화협, 통일연대의 3대 축으로 더욱 발전해 갈 것으로 보여진다. 중앙총부 차원에서 종단과 민화협에 공식 활동을 하고 있으나 ‘2002 새해맞이 남북공동모임’과 같은 연합 행사에는 종단쪽의 활동에 많이 치우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미흡한 민화협과 통일연대와도 더욱 연대활동의 범위가 넓혀져야 할 것이다. 중앙청년회가 통일연대, 민화협과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나, 예를 들어 기존의 사회개벽교무단 혹은 교도단체의 통일 부분 연합체을 구성하여 참여하는 등 두 단체와 연대를 강화하여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실질적인 통일운동단체를 육성한다면 원불교의 통일운동이 더욱 폭 넓고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미 타 종단에서는 성직자와 신자들이 종단활동 외에도 많은 활동과 참여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마당에 출발 하루 전날 통일연대 소속 40명을 포함한 46명에 대한 갑작스런 방북 불허는 통일연대 전체가 방북 포기에 이르게 되었고 이 조치는 결정적으로 이번 행사가 무산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