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 기니비사우서 식량원조 총책임 임형준 교도
"물과 전기가 사치품인 나라"
2005-11-17 한울안신문
“그 곳에선 ‘물과 전기가 사치품’에 속한다. 차로 20분만 달리면 원시 그대로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식량프로젝트 총책임자로 있는 임형준 교도는 일시 귀국해서도 그 곳 풍경이 눈에 선한듯, 이야기를 멈추지 못한다.
“140만 인구 중 7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100명 중 7,8명은 당장 생명이 위험한 실정이다. 특히 첫 수확(10월)을 앞둔 7,8월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그들에게 적절하게 식량을 배분해 줄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밝혔다.
하루 1달러 미만 생활
WFP의 우선 식량 배급 대상자는 5세 이하 어린이, 임산부, 6개월까지의 산모, 에이즈 및 결핵 환자 등. 연간 40만명에게 식량을 지원하는데, 국민의 1"3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좁은 땅에 14개 종족이 모여 살면서 내전이 끊이질 않아, 30년 전보다 생활수준이 더 나빠졌다는 평가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도 바뀌었다. 그러나 북한이나 동남아에만 한정되어 있어 문제다”고 우려를 나타낸 후, “보통 원조는 식량지원국의 국기를 부착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국가 이미지 홍보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35명의 직원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그는 대부분의 유엔직원들이 꺼려하는 최빈국 기니비사우를 스스로 지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갓 결혼한 부인도 함께 동행, “난 역시 필드형인 모양이다”며 껄껄껄 웃는다. 이런 그의 이력은 사실 대학시절 7,80여개국을 떠돌면서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난 지구를 콱 삼켜버렸다』란 책을 낼 정도로 ‘지구촌 마당발’로 통했던 그는 “한번은 남아시아를 배낭여행할 때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의 흉측한 모습으로 동냥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언젠가 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밝히기도.
영원한 토종 해외파
그도 한때 해외로 떠도는 생활이 지겨워 국내에서 꽤 괜챦은 직장을 잡아 1,2년 정도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마음 속 깊이 숨어있던 본능과도 같은 방랑벽(?)이 다시 그를 흔들기 시작한 것.
"그런 안정이 오히려 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못살게 했다”면서 “그래서 다시 세계로 눈을 돌리면서 외교통상부에서 선발하는 제5기 JPO(국제기구초급전문가)에 지원하게 됐다”고. 국제변호사를 비롯 해외 유명 대학 유학파들이 즐비한 지원자들 틈에서 그는 “토종 한번 키워달라”며 면접관들을 웃기는 걸로 만족했는데, 결과는 의외로 “수석으로 합격이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
해외로 떠나기 전 어머니(김정도화, 금정교당)의 권유로 영산선학대에서 1달간 생활하기도 했던 그는 “그때 제대로 원불교를 안 것 같다”며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원불교와 영영 멀리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그리고 “좌산종법사님이 ‘그 곳 아이를 한명 추천해 주면, 국내로 데려와 공부시키겠다’고 했다”며 “기니비사우로 돌아가면 이것이 가장 큰 숙제가 될 것 같다”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노태형 편집장 ist21@w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