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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카르마(습)의 오랜 수수께끼 풀다
좋은 이루다도 나쁜 이루다도 인간이 만들어
화두, 인공지능 시대의 물질개벽의 방향은?
‘이루다’라는 인공지능 여성이 최근 사형을 당했다. 수억 번의 학습으로 ‘이루다’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는데, 학습을 시킨 사람들(주로 남성들)이 바람직하지 못하게 이루다를 학습시켰다. 결국 성적으로나 인종적 편견을 가진 인공지능 사람이 되었으니, 사형을 시키자는 것이다.
약 10년 전부터 갑자기 뜨기 시작한 인공지능, 그리고 인공지능이 탄생시킨 ‘이루다’의 죽음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특히 ‘물질개벽 시대에 정신개벽’을 기치로 내건 원불교에게 인공지능 시대는 어떤 의미를 주는가? 소태산 대종사는 이루다에 어떤 의견을 냈을까, 화두를 걸어본다.
인공지능은 지난 80여 년간 사용해 왔던 통상적인 컴퓨터를 상대로 나온 약간 ‘뻥튀긴 단어’이다. 둘 다 계산을 하고 판단을 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여러 숫자를 덧셈, 곱셈해서 답을 낼 때, 숫자를 미리 메모리에 쓴 후 이를 꺼내서 셈을 하고 중간 결과는 다시 메모리에 넣는다. 통상적인 컴퓨터는 이러한 계산 방식을 따른다. 실수가 없다면 이 계산을 100번 해도 같은 답을 정확히 낼 것이다. 요즘 일기예보를 위해서 공기 분자(주로 수증기)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복잡한 미분 방정식을 푸는데, 이때 통상적인 컴퓨터를 사용한다. 결과로 중국 어디어디에서 온 공기가 언제 한국에 상륙해서 비가 내릴 것인지를 예측한다.
옛날 과학이 없을 때(물질개벽이 되지 않았을 때), 조상들은 어떻게 비를 예측했을까? 햇무리에 구름이 끼면 다음 날 비가 온다든지, 곤충이 갑자기 이동하면 비가 온다든지 하는 움직임을 통해 날씨를 예측했다. 오랜 학습에 의해서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한 것이다. 기본 원리는 모르면서 말이다. 인공지능은 바로 이렇게 사람이 하는 일을 흉내 낸다.
통상적인 컴퓨터와는 다르게, 동물의 뇌는 -사람을 포함해서- 수많은 신경세포로 되어 있다. 각 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들로부터 신호를 받아, 내부적으로 신호를 처리한 후, 다른 신경세포에 전달한다. 갓난아기는 뇌신경 세포를 잔뜩 가지고 있지만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다. 성장해 갈수록 신경세포끼리 연결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연결된 결과에 의해 판단도 하고 말도 한다. 지능이나 기억은 바로 이러한 연결된 상태를 말한다. 아이들에게 고양이를 몇 번 보여주면, 다른 얼굴을 가진 고양이가 와도 고양이라고 판단한다. 특출난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통상적인 컴퓨터에게 학습시키려면 무지막지한 계산량이 필요하지만, 사람은 척척 잘 한다.
동물의 뇌는 말을 배우고, 적을 알아차려 도망을 가고, 엄마·아빠를 알아차리는데 특출나도록 진화했다. 통상 컴퓨터와는 다르게 뇌는 ‘따로 기억하고, 따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뇌세포끼리 연결된 형태가 바로 기억이고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쌍둥이로 태어나더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다른 뇌세포 연결이 만들어진다.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뇌에서, 어느 연결 부분이 어느 악보를 외우는지 알 수 없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연결의 총체가 연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뇌 수술은 이 연결 부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혹이나 피가 고인 것을 제거하는 정도일 뿐이다.
이제, 카르마(습)라는 오래된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는가. 카르마란 다름 아닌 뇌 세포가 연결된 모습을 가리킨다. 인류가 직립하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수십만 년 노력의 결과이다. 이러한 능력을 요즘 아이들은 수년 안에 해결해 버린다. 인간은 수십만 년 -아니 더 오래된- 진보의 결과를 가지고 태어나고, 짧은 기간 학습에 의해서 짧은 시간에 각자의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이루다’는 이러한 뇌 세포와 비슷하게 행동하도록 세포를 흉내 낸 전자 회로와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학습에 의해서 연결이 만들어지도록 한 인공사람이다. 좋은 사람으로 학습시키면 좋은 연결이 만들어져, 좋은 이루다가 되고 나쁜 사람으로 학습시키면 나쁜 이루다가 된다.
과거 10년 동안 갑자기 ‘인공지능’이란 말이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필자가 대학원 다닐 때에도 인공지능이라는 공부를 했는데, 당시 멋진 이름만 보고 전공한 사람들은 30년 동안 직장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공지능이 뜨게 됐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반도체가 발전해서 세포(를 흉내 낸 전자소자)의 연결을 싼 가격에 만들 수 있게 됐다. 둘째는 인터넷 덕분에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사람이 하는 일의 대부분을 뺏고 있다. 비서 일, 바둑부터 시작해서 의사가 진단하는 것, 약품을 개발하는 것, 운전까지도 말이다. 이제 예술도 창작하려고 하고, 법관도 되고, 애인도 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시대에 정신개벽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공지능에게 ‘도’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일상수행의 요법을 학습시키면 ‘도’를 깨칠 수 있을까? 또한 인공지능에게 깨달은 자(원불교에서는 출가위, 여래위)를 판단하게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게 ‘번뇌’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이해가 아마도 인공지능 시대의 물질개벽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