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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개벽의 과학
정신개벽의 과학
[마음공부] 메타버스와 색즉시공
2021. 11. 23 by 박시형 교도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br>지능형반도체포럼 위원장
박시형
강남교당 교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지능형반도체포럼 위원장

‘시형아’ ‘네’ ‘속지 마라’ ‘네’라는 식으로 자신이 묻고 대답하는 엉뚱하게 들리는 대화가 선가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또한 ‘김서방이 술을 먹는데 이서방이 취한다’라는 화두도 있다. ‘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내’가 거짓 ‘나’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리라.

오래된 인도의 전통은 현실을 ‘허깨비’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확실하게 느껴지는 나의 인식을 포함하는 현실(색)이 곧 ‘공(空)’이라고까지 말한다. 색즉시공이라는 말이다. ‘텅 비어 있는 것이 오히려 현실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한다. 원불교인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금강경〉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을 헛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오랜 세월 삶의 현실이 하도 척박하여, 이를 허깨비로 보고 위안으로 삼으려는 것이기도 하고, 텅 빈 공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체가 부패해서 없어져 버리고, 쓰레기통에서 벌레가 생기는 것을 텅 빈 공간으로 돌아가고 텅 빈 공간에서 생기는 것으로 말한 것이다. 과학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 우리가 텅 빈 공간이라고 부르는 곳은 수많은 먼지, 분자들로 차 있고 빛과 소리가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최근 컴퓨터 반도체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서 가상현실이라는 허깨비와 내가 아닌 ‘다른 나’가 메타 공간에서 놀고 있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실생활 공간과 메타(보통 초자연이라는) 가상공간을 만들어서, 두 개를 ‘디스플레이’ 등을 통해서 혼합시킴으로써, 사람의 활동 범위를 넓히자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3.5차 공간 정도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심지어 ‘나’의 분신(아바타)을 만들어 아바타가 게임도 하고 사람도 사귀고 비즈니스도 하고 여행도 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가상공간을 만들어 가상 부동산을 분양도 하고, 가상 상품을 구매하는 일도 벌어진다. 현재 가상공간에 만든 상가가 비싼 가격에 현금이나 가상화폐로 팔리고 있다. 한국의 가수그룹 BTS의 메타버스 공연에 나의 아바타가 참여하고 놀이도 한다. 또한 나의 아바타에 AI 기능을 더하면, 나의 분신이 진화도 하고 다른 아바타들과 살아갈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지 컴퓨터가 사는지 모호해진다.

한편으로는 오랜 인류의 숙원인 불생불멸이 이뤄지는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육체는 영원하지 않겠지만 또 다른 ‘나’가 가상공간에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AI, 메타버스 같은 과학이 오랫동안 인류가 탐구해 왔던 자아, 인식, 행복, 영생이라는 명제들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형국이다.

현실을 헛것으로 보는 인도 전통에 비해서 원불교에서는 현실을 매우 중요시한다. 매 순간 부딪히는 현실과 나의 마음 사이의 경계를 관찰함으로써 나의 본성(자성)을 지키고 함양하는 마음공부를 가르친다. ‘색’뿐만이 아니라 빈 공간 역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무소유를 주장하는 대신 나의 마음을 크게 해서 더 많은 것을 담는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나의 해체, 마음 영역의 넓어짐 등이 아마도 ‘공’을 체득하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든다.

과학이 참다운 ‘나’를 모른 채, 또 다른 나인 아바타를 만들어 내고, 참다운 현실을 모른 채 또 다른 가상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의 아바타 때문에 마음이 들뜨고 잠도 오지 않고 정신 분열에 시달릴지 모른다. 현실에서 참다운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차원의 우주(공)로 삶을 넓힌다는 원불교 가르침이야말로 ‘메타버스’ 시대에 참다운 삶의 길을 제시하는 정신개벽이 될 것이다.

1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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