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희망, 환경운동으로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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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희망, 환경운동으로 열자
  • 한울안신문
  • 승인 2001.11.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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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지구 환경법회 10월28일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새천년의 희망
반갑습니다. 우리는 현재 새로운 천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0시에 잠을 자지 않고 각 나라 사람들은 시내 길거리로 나와 새천년을 기다렸습니다. 불꽃놀이가 뉴욕에서 파리에서 서울에서 북경에서 화려하게 퍼지며 새세기에 대한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9월11일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테러가 있었습니다. 어마 어마하게 큰 빌딩에 비행기가 부딪치는 것을 보고 너무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많은 곳에서 탄저균이 발견됐습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1월 뉴욕 세미나에 가게 되어 있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취소되었다는 전화입니다. 전 그걸 보면서 미래 예측이 지금처럼 필요한 적이 없어 보입니다. 전쟁만큼 환경과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있습니까? 지난 20세기는 많은 성장과 발전을 해 왔습니다. 6~7백만년 전부터 인류가 지구에 살면서 많은 변화를 해왔지만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20세기, 지난 백년동안 우리 인간이 자연을 파괴시키고 오염시킨 것이 나머지 6~7백만년 동안보다 더 큽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온 1백년이 그동안 인간이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은 환경을 파괴해왔는데 21세기를 살아갈 때 20세기를 연구하고 검토하지 않으면 21세기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겁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깊이 성찰할 기회 없이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20세기의 엄청난 변화
미국 사람들의 놀이중에 동그라미 원에 블럭을 넣어 깨는 놀이가 있습니다. 하나 하나씩 깨는데도 그 원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A라는 사람, B라는 사람, C라는 사람이 빼도 그대로 있다가 나머지 한 사람이 잘못 빼면 그 공은 무너집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생태계가 그 상황에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계속적으로 훼손되는 속도가 너무나 빠릅니다.
우리가 살았던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했습니까. 컴퓨터를 봅시다. 컴퓨터는 1946년에 나왔지요. 불과 50여년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왜 만들어졌습니까. 지금처럼 정보를 이용하고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20세기 전쟁중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폭탄이 목표물을 너무나 벗어나니까 바람속도와 비행기속도를 정확히 측정해야하는 필요성에서 컴퓨터가 나왔습니다. 처음 컴퓨터 무게는 40톤이었습니다. 큰 교실에 컴퓨터 한대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1.5Kg 노트북을 들고 다닙니다. 15년 전만해도 우리가 휴대폰을 가지고 지하철에서 전화한다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자동차가 대량생산된 것은 포드라는 사람 때문입니다. 대량생산이 만들어낼 문제를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차로 인해 얼마나 넓은 도로가 필요합니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로스엔젤리스는 면적의 55%가 자동차 도로입니다. 자동차로 인해 넓은 도로가 있어야 하고 면적이 넓은 주차장이 있어야 하고 엄청난 석유가 있어야 하고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서울 대기 오염의 85%는 자동차 매연입니다. 또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냅니다. 1년간 자동차 사고로 1만명이 죽습니다. 포드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 때 좋은 점만 생각했지 자동차가 인류에게 주는 부정적 요소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부정적인 영향은 환경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문제는 그대로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지난 뒤에 나타납니다. 지난 100년 동안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입니까? 에너지 중에 석유와 석탄이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석유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어 기차가 달리고 자동차가 달리고 동력을 위해서 많은 석유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석유야말로 20세기 백년 동안 우리 인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석유로 인한 21세기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영향은 땅속의 탄소화합물을 태워서 CO2라는 탄산가스가 점점 늘어나 대기로 퍼져서 우주로 나가야 되는데 비닐하우스처럼 쌓여서 못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온도 상승으로 우리나라는 2.5도가 상승했습니다. 그래서 이상 기후가 생기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고 안오고 이렇게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이렇게 가면 남극, 북극 얼음이 녹아서 백년이 지나면 지구 수면이 1.5~4.5m 올라 갑니다. 그렇게 되면 남태평양의 그 많은 국가와 섬이 없어집니다. 또 바닷물의 농도가 묽어집니다. 묽어지면 생물들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를 편하게 해줬던 석유가 CO2를 늘어나게 해서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석유를 에너지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석유 화합물인 화학공업입니다. 해로운 플라스틱, 화합섬유, 비료 등 우리가 쓰고 있는 것들은 자연상태가 아닌 석유로 만든 것입니다.

북극곰 4% 암수 같아
우리는 편해졌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즉, 석유화합물을 많이 써서 나타난 결과가 무엇입니까? 환경호르몬입니다. 환경호르몬은 가짜 호르몬이에요. 가짜가 생기니깐 생태계가 교란이 되는 거에요. 암수가 바뀌고, 암수생식기가 동시에 생기고, 불임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3년전에 핀란드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경이 잘 보존된 핀란드가 북극곰을 조사한 결과 2000마리 중 90마리가 암수 생식기가 같이 달려 있다는 겁니다. 가장 오염되지 않은 곳에 사는 곰의 생식기가 동시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100마리 중 4마리가 기형이 되는 거에요. 화학자들이 암수가 달린 곰을 잡아 분석했는데 곰의 몸속에 pcd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pcd는 전기를 통하게 하지 않는 물질입니다. 우리가 쓰는 변압기가 pcd 덩어리입니다.
북극에는 우리가 쓰는 변압기 같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쓰고 버리는 그것이 땅을 오염시키고,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태우니까 공기를 오염시키고, 강으로 흘러가고, 바다로 흘러가면 바다의 플랑크톤이 먹고, 조그만 생물이 먹고, 그것을 새우가 먹고, 작은 물고기가 먹고, 큰 물고기가 먹고, 그 물고기를 곰이 먹는 거에요. 그래서 몸속에 pcd가 축적 되는 겁니다.
지구가 오염되고 오염되지 않는 것은 구별이 없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더 오염이 되고 덜 오염이 됐지만 남극에는 800m상공에서 pcd가 검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모유에서도 pcd가 검출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편하기 위해 석유를 쓰고 에너지를 만들어 화학물질을 만들어 편리함은 금방 나타났지만 부작용은 한이 없어요. 공기가 오염되고 토양이 오염되는 것이 토양에서 발암 농작물을 먹는다든지 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환경 오염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체내에 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딸기와 생쥐의 유전자 결합
여러분 유전자 조작 식품, 복제인간이 나올 것 같습니까?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까? 나오겠죠!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모든 분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문제를 신문을 통해서 들어봤을 것입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전자를 조작한 식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유전자 조작은 같은 종끼리가 아닙니다. 딸기와 생쥐가 유전자 조작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동식물인데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사람과 고구마도 유전자 조작이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에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반짝이는 전구를 달잖아요. 그 전구를 앞으로는 발광하는 바다의 해파리 유전자를 나무에 주입시켜 그 나무를 반짝거리게 만들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것을 왜 합니까? 말로는 인류 복지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누가 합니까? 회사가 합니다. 바로 돈을 벌기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나이드신 분은 아시겠지만, 옛날의 닭들은 자유로이 마당을 거닐었지만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쪽방에 가두고 천 마리든 만 마리든 다 넣고 키우며 사료 또한 배양 사료를 씁니다. 빨리 크게 하는 성장촉진제도 넣고, 곰팡이 방지제도 넣고 병아리가 예민하니까 신경안정제도 넣고 배양시키는 거에요. 그러다 스트레스 받으면 크지 않으니까 음악도 들려주고 그러다 병이 나면 한꺼번에 죽습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농약을 뿌립니다. 균이 생기면 살충제를 뿌리고, 벌레가 생기면 회충제를 뿌리고, 풀이 나면 제초제를 뿌리는 거에요. 유전자를 조작해서 병충해에 아주 강한 것을 집어 넣는 거에요. 농민들은 어떻습니까? 수확량이 많아지고 병충해에 강하니까 좋아하는 겁니다. 이론은 아주 좋아요.
사람을 통한 실험은 100년후에나 그 결과를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생명주기가 빠른 실험용 쥐를 써서 실험을 하죠. 이것들이 안전하다고 하면 판매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수입한 콩의 70%가 유전자를 조작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많이 하는 옥수수는 40%입니다. 이런 현실입니다. 식용유, 된장 등 우리가 대부분 유전자 조작으로 된 것을 먹고 있는 거에요.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당장 변화됩니까? 확인되려면 100년이 걸리는데 이것을 안쓸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겁니다. 2년전 시애틀에서 굉장한 데모를 했습니다. 미국의 유전자 조작을 한 농산물이 계속 싸게 들어가고 유럽의 농민들이 망해서 유럽의 환경단체와 농민들이 격렬하게 데모를 한 것입니다. 그후로 유전자 조작의 표시를 하게 된거에요. 표시가 되어 있으면 사지를 않겠죠? 우리나라는 유전자 조작이냐 아니냐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전자 조사 여부를 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선진국들은 유전자 조작 식품에 의한 미래 인류의 위험성을 알고 대처해가는데 우리는 한참이나 많이 늦죠. 유전자 조작 식품을 유럽에서는 수입을 금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 수입합니다. 그래서 한 번은 저희 단체가 외국의 다국적 기업에 공문을 보내서 항의를 했더니 한 회사만 빼고 다른 회사들은 다 팔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국민의 환경의식이 낮은데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항의하면 뭐합니까 그들이 유전자 조작을 알겠습니까? 국민의 환경의식이 높아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버려진 생명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 뭔지 아십니까? 정보산업 다음으로 생명공학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을 공학적으로 합성하는게 좋은 학문입니까? 생명은 적어도 안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생명을 중시하지 않아요. 이익을 중시하며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는 거죠. 돈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박혔어요. 한 예를 들자면 수석분재를 하시는 유명한 분이 평생을 가꾸고 만든 분재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300년이 되었다는 소나무분재를 보면서 저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기업회장님은 대뜸 “얼마짜리에요?”하는 거죠. 전시도니 모든 물건을 하나 하나 집으며 이건 얼마, 이건 얼마 묻는 거예요. 그 분은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는 거에요. 또 몇년전 한의사 아버지가 죽으면 그 재산은 아들이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돈 때문이죠. 보험에 많이 가입해 놓고 자기 다리를 철로에다 놓고 자른 사건도 여러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전 그걸 보면서 돈 중심사회가 되면 생명도 가벼워지고 환경이 오염되고 지역공동체가 파괴되고 모든 게 다 파괴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게 다 파괴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좌산 종법사님의 “오염을 시키지 아니하면 맑고, 자연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조화와 균형이 정착되면 밝고, 자연의 은혜를 가득히 느끼고 활용하면 훈훈하다”는 말씀이 지금의 우리에게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얼마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베쿠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경비행기로 40분을 갔더니 태평양연안의 조그만 마을이 있었습니다. 천년된 나무가 우거져 있습니다. 그 나무가 천년을 살고 죽어서 500년을 서있다고 합니다. 500년쯤되면 나무뿌리가 약해져서 쓰러집니다. 하천에 쓰러지면 나무는 물고기의 서식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그림자도 만들어주고 해서 그곳에 연어들이나 물고기들이 많이 사는 겁니다. 연어가 알을 낳고 죽으면 그 시체를 새들이 먹고, 곰들이 먹고, 배설을 하면 거름이 되고 거름이 나무의 영양분을 주는 거죠. 원주민들은 나무와 곰과 연어들이 다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이 그곳의 연어들을 분석했더니 연어에만 들어 있는 토착성분이 검출됐습니다. 나이트코젠과 시보라는 성분입니다. 그래서 나무를 분석해봤더니 그 나무에도 똑같은 성분이 들어 있는 거예요. 또 그곳의 나무는 질소 인 성분이 물에 들어 있어서 다른 곳의 나무보다 3배는 빨리 자란다는 거에요. 결과를 보면 그곳은 원주민들이 생각한데로 비과학적일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에겐 과학적이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어가 해마다 알을 낳기 위해 올라오면 1년에 천마리만 잡아서 양식으로 씁니다. 정확히 천마리만 잡는거죠. 이것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환형 사회라는 겁니다. 그런데 백인들은 어떻습니까? 나무를 잘라냄으로 연어의 서식지가 없어지고, 그러니까 연어가 자라지 못해서 원주민들은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백인들은 지원을 해준답시고 연어를 팔면 원주민들은 그것을 사먹고, 원주민들은 예전에는 노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편하니까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살이 찌고 당뇨병에 걸리고 장님이 되고 그렇게 되는 거에요. 백인들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병을 주는 거에요. 이런 사례를 보면 우리 현실에서 일을 많이 하지 않는게 좋은게 아니에요.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하시던 빨래하고 일하는게 거의 사라졌어요. 요즘 사람들은 세탁기, 진공청소기, 건조기 등 거의 모든 일을 자동으로 편하게 처리하는데도 불편하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또 살이 찝니다. 살을 빼기 위해 헬스를 하고 힘이 들면 지방흡입술을 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니까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지 않고 자연질서에 따르는 원불교 정신이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인간 중심적 사고로 자연을 정복하고자 기술을 발달시키고 소를 키워 젖을 짜고 젖이 잘 나오지 않으면 도살하고 그 고기가 맛이 없으면 폐기하고 그것도 돈이 많이 든다고 죽은 소를 갈아서 사료에 섞어서 소에게 다시 줍니다. 과학적 상식으로 단백질과 칼슘이 많으니까 훨씬 더 소가 잘 크고 우유가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는거에요. 소가 미치는 거죠. 그러니까 소가 탈이 나고 사람이 탈이 나는 거에요. 유럽에서는 그들의 주식인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거에요. 우리가 가끔 먹는 티본 스테이크 있죠 유럽에서는 먹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있습니까? 서양 사람들이 발전시킨 과학기술이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버려서 주거환경을 초과하고 있어요. 그래서 물, 산, 공기가 오염되고 오염된 식물, 우리 인간은 암에 걸리는 겁니다. 4명중 한사람이 암에 걸리는 거에요. 우리가 사는 환경이 지뢰밭인데 그 지뢰밭을 뛰어다니니 지뢰를 안 밟습니까? 암에 걸리지 않는 근본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됩니다. 암을 치료하는 학자가 더 늘어나고 국립 암병원이 생긴다고 암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생태교육
앞으로 21세기교육은 자연을 많이 보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체가 나하고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 단체는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에게 한 열흘씩 우리의 강산을 돌아보게 합니다. 한 어린이를 예를 들자면 섬진강 최상류에서 광양까지 8일을 걸었는데 편지에 섬진강을 친구라고 해요. “진강아! 널 처음 만났을때는 작았어. 그런데 넌 나보다 훨씬 빨리 커. 너를 보면서 서울의 딱딱한 보도블럭이나 자동차 대신에 공기가 오염되지 않고 푹신푹신한 흙에다가 야생화에까지 일주일동안 너무너무 배웠어. 진강아! 내년에 할아버지와 다시 올께”라고 합니다.
여러분 일주일 동안 시내에서 영어공부, 태권도 하면 어린이가 달라집니까? 절대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린시절에 일주일 동안 자연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다른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겁니다. 개구리 죽이고, 벌레 죽이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우리의 환경을 지킬 수 있습니까? 어릴때 생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모든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생태계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할 때 생태계는 균형이 잡히고 우리 인간도 건강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때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없어진다고 봅니다. 다른 생명체도 같이 공존해야 되는데 어려운 사람, 굶주린 사람, 장애인, 노인 등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같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바탕, 근본이 저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그런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런 사회가 안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력하는 종교인이나 신자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봅니다. 그런 것이 21C를 통해서 바꿔야 되는데 자연과 인간의 관계, 다른 생명체와 인간의 관계, 지금 사람들과 다음 세대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우리는 어릴 적에 물을 그냥 써왔는데 지금 세대는 피티병으로 먹고 버립니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환경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이제 이 지구는 커지지 않습니다. 두개도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순환형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누군가 희생을 당하면서 우리에게 되돌아 오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죽으면 인간도 확실하게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회용을 쓰지 않습니다. 볼펜대신 만년필을 씁니다. 젖가락도 들고 다닙니다. 버리지 않는 것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사람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사람이 노력한다고 동강 댐 건설을 백지화 할 수 있습니까? 또 새만금의 어마어마한 좋은 갯벌을 보존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다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그만 환경단체와 많은 시민단체가 해왔는데 이러한 부분을 종교인들이 그러니까 원불교, 불교, 가톨릭, 개신교 등 또한 원불교내 천지보은회와 같은 생태모임과 환경조직을 만들어서 같이 연대해서 나갈 때 21세기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노력 하면서 우리가 21세기를 예측해 나가야하며 노력하지 않고 그냥 예측만 한다고 해서 내일이 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좌산 종법사님의 큰 말씀을 지금 시대에 우리가 맞게 해석하고 실천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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