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백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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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백일 기도
  • 전재만
  • 승인 2002.06.28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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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선 교도"여의도 교당


3월1일 백일기도 결제를 위해 거창으로 향하는 도중 휴게실에서 교감님이 “박청원씨도 백일기도에 꼭 참석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백일기도 접수 순으로 호명하게 되는데 아내가 제일 처음 접수를 했다고 꼭 집에 가서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 부부의 백일기도였다. 사실은 나는 이번
에 큰 기도 서원을 세웠다. ‘어떠한 경계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신념과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것을 우리의 교법에 맞춰
행동하고 실천해보자. 또한 한번도 결석하지 않으리라. 그리
고 우연한 기회에 얻어지는 고를 조금이나마 감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굳은 마음을 먹고 시작된 서원이였다. 본
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고교시절부터 습관이 되어 문
제 될 것이 없었으나 자명종 시계도 하나 사고, 만일의 사태
에 대비하였다.

첫번째 위기
공장에서 사고가 났다 외국 근로자 한사람이 음료수 병에 담
아놓은 약품을 잘못 마셔 응급실에 입원하였으나 사망하였
다. 약 보름간 정말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망 후 경찰조
사에서는 밤을 새워 조사를 받았다. 아침 다섯 시가 다 되도
록 조사는 계속되고 바로 그때 수사관이 갑자기 피곤하니 잠
시 쉬었다가 아침에 다시 시작하자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
무슨 연고이고? 그 길로 시화공단에서 교당까지 한달음에 달
려서 기도하지 않았는가! 그때의 그 정성으로 모든 절차상의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무리를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
한다.

두번째 위기
앞서 모든 사건이 정리된 그 다음날. 나의 조카 결혼식이 대
구에서 있는 날이었다. 그간의 일로 심신이 피곤하고 몸도
지쳐 있었지만 고향의 친지들이 진해에서 올라오시고 살아
계신 어머님도 뵈올 수 있고 해서 가 뵈어야 할 자리였다.
그러나 한편 100일 기도에 대한 핑계를 대어본다.
나는 집안의 막내 중의 막내이고 다가오는 명절이 있지 않느
냐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요법회와 나의 기도 서원에 금이
가는 것이 싫었다. 결국 아파서 못갔다는 나의 전화에 집안
의 형님들 걱정 전화가 내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래도 그 당시 나는 많이 아팠으며 최소한 거짓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당당하게 말씀 드릴 수 있다. 대종사님 법으로
향한 나의 서원이 최우선이니까.

세번째 위기
절친한 죽마고우 친구의 모친 부음이 있었다. 일요일 저녁에
비행기로 진해로 날아갔다. 진해에 계신 어머니 뵙고 그간의
일을 고하고 나니, 조카결혼식도 못 올 정도로 많이 아픈가
걱정을 많이 했었단다. 오늘은 진해에 온 이상 장지까지 따
라갈 마음이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이것이 경계인가. 100
일 기도 하루 빠지는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밤10경 상주회
의에서 4일 장으로 연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다음날은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에 의해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
다. 이것이 무슨 연고인고. 이제 나의 의지대로 하루 결석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의 마음작용을 따라 움직였는데 대종
사님께서 나의 공덕과 심신이 부족하므로 몸으로라도 보시를
하라는 뜻인가? 하루도 100일 기도 정성을 놓치지 말라는 가
르침을 내가 왜 몰랐단 말인가. 나는 그 길로 심야 고속버스
를 타고 상경하여 기도에 참석했다. 정말 개운한 그 맑은 정
신의 참 맛 그 누가 알리요.

네번째 위기
일터에서 공무에 의한 행정적인 서류 정리가 있었다. 며칠전
부터 시작된 것이었지만 관련된 전직원이 동원되어 협동심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촉박하였다. 일요일 법
회는 당연히 못 가는 것이었고 하루의 정성 쏟는 것을 교감
님께서 새벽 기도참석으로 대체해 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
그 외에도 두세번의 위기가 왔었다. 직원 회식, 친구 모임 등
으로 음주에 의한 위기가 있었다. 그땐 자명종 시계도 소용
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겨내었다. 정말 기막히게 잘 참아
내었다. 이 순간 나의 아내 청원씨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성지순례
5월26일, 말로만 듣고 교전으로만 읽었던 영산 성지를 20년
만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지나가는 길에 먼발치라도 보았음직한데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성지순례 중에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세워 놓았던 마
음공부에 대한 정의가 나의 고집임을 보았다. 좀 더 일찍 성
지순례를 했으면 나의 교리 공부에 많은 진전이 있었을거라
는 후회도 생겼다.
성지순례 이후 6월8일 마지막 100일까지 시간이 정말 더디게
지나갔다. 기도시간에 정성을 더욱 모아보기도 하고 무엇인
가를 간절히 염원해 보기도 하였다.
생각의 속도는 정말 빠르다고 했던가. 과거와 미래와 또 아
름다운 추억과 다가오는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찼다.
나의 마음을 비추고 또 비추면서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13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님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 중 정말 아버님의 환영을 보았다. 또한 모든 살아있
는 가족들과 즐거운 날들이 펼쳐지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끝으로 100일 기도를 통해 나는 좀더 젊을 때 분명한 마음
과 오롯한 정신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일념을 세웠다.
백일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게 나를 지켜주신 여러 선원 여러
분들과 나와 같이 동참해준 내 아내와 두 아들에게 감사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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