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섭 교도의 마음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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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섭 교도의 마음아, 안녕!
  • 한울안신문
  • 승인 2007.04.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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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편의 섭섭함


남편 : (흥분되고 신나는 말투로) 여보! 잘했지? 와서 내 설거지 솜씨 좀 봐!


아내 : (대충 살펴보다ㄱ) 설거지야 누구나 다 하는 건데 무슨 자랑이라고... 설거지 다하고 나면 씰크대 정리도 해줘야 하는데 여기저기 물튄게 그대로네요. 당신이 이렇게 하고나면 어차피 내 손이 또 가야 하니까, 두번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편 : (화난 말투로) 그러니까, 당신 혼자서 다 하라고, 알았어!


아내 : 당신, 그렇다고 뭘 화를 내요.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아내를 위해 생각해서 좋은 일 한번 한답시고 설거지를 했는데, 수고했다며 고마워하기는 커녕 깔끔하게 뒷처리 못했다는 핀잔을 들으니 남편은 섭섭했겠지요. 또한 그 섭섭함 속에는 살며시 웅크리고 있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어요. 설거지 문제를 떠나 아내를 늘 살피지 못해 미안하고 감사하는 애틋한? 심정이 무참히 밟히니 그 상처가 더 컸을 겁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원망감과 함께, 돌이켜보니 연애시절의 재치와 유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젠 전업주부로 현실만을 쫓는 아내가 안타까우면서도 또 야속하겠지요.



남편의 섭섭함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단지 아내의 말투일까요? 우리는 이런 경우 늘 아내를 원망해왔습니다. 상대방의 참 뜻을 그렇게도 모를까, 어디 두고 봐라 어깨아프니 허리아프니 거들떠나 보나, 이런 오기까지도 생기죠.


하지만 사실 아내의 역할이라는 것은 남편 내면에 깊숙히 잠복되어 있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수면 위로 꺼내 준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내는 남편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숨기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준 불씨이며, 이를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학습 등으로 잘 훈련된 숨겨진 제 2의 자신을 발견토록 한 도우미 역할이 바로 아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도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 생기거나 특히 요청을 받아 한 일에 뒷말이 들리면 화가 납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들은 상대방이 아닌 자신의 생각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남편은 처음엔 보상과 같은 생각 없이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설거지의 결과에 대한 아내의 말투를 통해 무의식 중에 자신이 바라고 상상해온 아내의 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두운 생각에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자신을 가둔 꼴이 된 것이죠. 아내는 심지어 남편이 왜 화를 내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인정받는 행위, 칭찬받는 행위는 살려야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 칭찬받고 싶어하는 마음, 이것이 상처의 주범임을 확실히 깨닫자는 것입니다. 아내는 나를 일깨워준 감사의 대상이지 원망의 대상은 아니며, 원망은 자신 속에 내재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아내의 말과 충돌, 표출된 감정임을 보자는 것입니다. 의도된 선행이 아닐지라도 섭섭한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 선행은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보호이며 고도의 처세술, 위선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자신의 섭섭한 마음을 발견했을 때 자신을 비하시키거나 굳이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하고 싶어서 했는데 핀잔을 들으니 섭섭했다, 이런 문제로 부끄러워할 것은 아닙니다. 이런 발견들을 통해서 우리는 성숙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감추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미성숙 단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소유한 나를 사랑하고 수용할 때 자신을 더욱 깨어나게 합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알듯이 말입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된 사람, 자신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남에게 베푼 행위에 대해 상대방의 반응에 섭섭하거나 우쭐대는 기운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채우는 공부와 함께 마음을 비우는 공부가 효과적입니다. 채우기와 비우기는 같은 뜻입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채워야 비울게 있습니다. 비우기, 채우기는 궁극적으로 마음의 유연성을 길러 여유를 갖자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지요.



그럼 아내의 마음을 살펴볼까요? 아내 자신도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경계를 만난 적이 있겠죠. 그 경계를 교훈삼아 배움의 장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남편이 내 앞에서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구나, 생각이 되면 칭찬하는 마음을 아끼지 마세요. 욕심을 내보면, 마음공부에 내공이 쌓인 아내라면, 가사 일에 지친 자신의 모습이 안쓰러운 남편이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해줄게’ 라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정말 고마워, 처음이니까 마무리는 서툴렀지만 나를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은 최고야!”라며 남편을 인정하고 칭찬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평론가·마음공부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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