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흑석동에 가파 봉사를 시작한 것은 조금 추운 초겨울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교육을 마쳤으니 실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회장님을 따라 갔지요. 불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지하실에 들어서자 역겨운 냄새와 발을 디딜 곳 없을 만큼 물건이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회장님은 양말을 벗으시고 목욕탕에 들어가 청소와 빨래를 하셨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잠깐 망설이다가 부엌을 치웠고,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일을 끝냈습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겠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나는 못하겠다. 마음도 아프고 눈물도 나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지만 4주를 해야 되기에 또 오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때 ‘부처님도 정업은 면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할머님의 모습도 당신이 지은 바겠지’ 생각하고 할머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어두운 지하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식구들을 깨웁니다. 그리고 반찬 준비를 해서 밥을 차려 드립니다. 할머니는 잡곡도 팔러 다니셨는데 어느 날 넘어지셔서 집 밖으로 나가질 못하고 계십니다. 넘어지고 나신 후로는 한 달에 두 번 목욕도 시켜드리고 같은팀 계선언니가 머리도 깎아드립니다. 그 일은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주고받는 이치는 어쩜 이리 호리도 틀림이 없을까요. 누워서만 생활하던 장애 아드님이 일어나 어머님의 대소변 수발을 하고 있습니다. 걷지 못하는 어머님의 발이 되어 이제는 그 아들이 어머니를 돌봅니다. 이제 어머니는 아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십니다. 저는 아드님에게 “엄마에게 잘해드려야 해요. 연수씨 아팠을 때 엄마가 했던 것 처럼요”하고 말하면 “네”하고 대답합니다.
이제 할머님의 여생은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 몸으로 당신과 다섯 식구를 챙기고 사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기도 합니다.
할머니 아드님 효도 받으시고 모진 풍랑 내려놓으시고 다시 오실 때에 건강한 몸으로 부처님 회상에서 꼭 만나서 영생에 도반 되어 이 공부 같이 하자고.
처음에는 집에 들어가면 냄새가 역겨워 힘들었는데 지금은 향기로움으로 가득 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