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원불교 교도들은 내가 열심히 신앙하고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다보면 가족들이 감화되어 입교하겠지 하는 소극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녀들은 내 손을 떠나 다른 종교를 갖게 되어 한 집안 두 종교로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 교당 법회에 참석하지 않음 용돈을 주지 않겠다는 다소 무거운 형벌(?)을 이용해 자녀 세 명을 신심 깊은 청년 회원으로 키운 무서운 엄마가 있다.
# 적극적인 가족교화
여고 때 원불교와 인연 맺은 이후 40년간 신앙에 대해 어떤 흔들림도 없이 크나큰 확신을 가지고 있는 강남교당의 김혜인 교도이기에 이런 스파르타식 교육도 통하였을 것이다.
결혼 이후 줄곧 아이들과 자신만 교당을 찾은 그녀는 어느 날 남편(오달원 교도)에게 승용차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했고, 남편은 교당 교무님께 인사드리지 않으려 청바지 차림으로 식구들을 교당에 데려다 주곤 했다.
이에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읽고서 청바지 차림의 남편을 교무님께 기습적으로 소개하는 재치를 발휘했고, 겨우 교당에 두 번 발들인 오 교도를 당시 박청수 강남교당 교감님이 교화단회 단장을 맡겼다.
“책임을 맡겨줘야 교당에 나올 거라 생각하신 교무님의 깊을 뜻이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를 통해 원불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처음부터 감투를 쓰고 시작한 종교생활이 부담스럽진 않았습니다.”
아내에 의해 뜻하지 않게 시작된 오 교도의 원불교와의 인연은 아마도 이미 전생부터 이어져온 진리의 뜻이었음에 틀림없다.
# 대안학교에서의 보람
6년 전, 헌산중학교가 개교하게 되었고, 당시 고등학교 교사였던 오 교도는 교단의 부름을 받아 헌산중학교 교장이 되었다.
헌산중학교가 대표적인 대안중학교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기까지 여러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는 그의 선택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
교장이 되기로 마음먹을 때 이미 남은 생을 헌산중 아이들을 위해 살리라 진리 전에 다짐한 터라 어떤 것도 그에겐 어려움일 수가 없었다.
“공교육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기에 당연히 공교육에서 책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안학교는 제도적으로 꼭 필요합니다.”
오 교도는 지리산 종주 때나 해병대 캠프, 국토순례 때 힘든 고비마다 포기 없이 끝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아이들을 보며 가능성을 발견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아이들은 모두 참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을 때 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입학할 때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차츰 웃음을 찾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대안학교 교사들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입니다.”
김 교도는 남편이 헌산중 교장선생의 제의를 받았을 때 모든 결정을 남편이 하도록 전적으로 맡겼다. 원불교인으로서 성실히 신앙하고 수행하는 남편이 우리 법에 의해 어떤 일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삼남매는 마음공부 전도사
요즘 김 교도는 강남교당 청년회의 회장을 역임한 큰 딸(오선이 교도)을 보면 대견함과 기쁨이 함께 몰려온다.
큰 딸은 직장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많은 문제들을 종교생활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
시민선방과 강남교당을 오가며 마음공부를 하더니 급기야 원기 93년엔 강남교당 청년회의 회장을 맡아 교당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냥 따라다니던 선이가 이렇게 교당의 주인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엄마로서 큰 행복이지요.”
삼남매는 교당 다니며 일상생활에서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매사에 감사생활을 한다. 스스로도 변화를 느끼는지 이제는 친구들에게 ‘마음공부를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하루하루가 재미있어 진다’며 마음공부의 전도사들이 되었다.
‘우리 식구는 무조건 교당 다녀야한다’는 염원으로 삼남매에게 배우자 선택에 압력을 행사하는 김 교도와 오 교도는 아이들의 공부가 깊어질수록 부모로서 더욱 조심스러워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챙기게 된다고.
문화사회부 운영위원 6년, 전국 여성회 운영위원 2년을 역임한 김 교도는 요즘 새로운 계획을 갖고 있다. 지금껏은 수학 과외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어 보은봉공에 소극적이어서 항상 죄송했는데, 올해부터는 과외를 줄여 봉공 활동을 열심히 할 계획이다.
“원불교에서의 핵심은 봉공인데, 전 그동안 열심히 하지 못했어요. 올해부터는 제가 가진 재주인 아이들 가르치는 것으로든, 무엇이든 일주일에 이틀은 보은봉공을 위해 비워둘 생각입니다. 이왕이면, 교당인적자원을 활용하는 청소년 교화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남편은 교립 헌산 중학교의 책임을 맡음으로, 아내는 보은봉공으로, 아이들은 원불교 마음공부의 전도사로 이들은 이렇게 대종사님의 경륜을 따라 배우고 일원대도를 실천하는 법제자들이 되었다.
많은 일체중생이 우리 원불교법의 은혜를 두루 입도록 까지 이들의 실지 불공은 그칠 줄 모를 것이다.
박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