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게 서툴다 보니 제 자신이 움츠러든 것도 사실입니다.”
남들처럼 교전 사경도 못했고, 법 높은 법사님들의 설법도 글로 간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공부가 언제나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하는 김주덕 교도. 하지만, 70여년 인생을 가족의 조력자로, 40여년을 한결같은 봉공인으로 살아 온 김 교도를 감히 누가 공부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호를 내렸던 교무님의 말처럼 ‘충분히 차고도 남는, 아니 넘치고 남는’ 교도가 바로 그녀다.
# 며느리에서 어머니로
구로교당 앞마당에 윤이 자르르한 장독부터 그 안을 가득 메운 된장, 고추장까지 교당 곳곳이 그녀가 정성으로 쓸고 닦아 온 살림살이다. 젊었을 때에는 추운자리 힘든자리 가리지 않았던 교당의 며느리로, 일곱 손주의 할머니가 된 지금에는 살림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교당의 어머니로서 한번도 교당살림을 놓아 본적이 없다.
“교당식구들과 같이 앉아 얘기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게 좋습니다. 내가 교당 어르신들에게 배운 것들을 젊은 교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고요.”
교당식구 일이라면 아픈 와중에서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다는 그녀. 공부방 모임부터 교도들의 애경사까지 교도들의 일이라면 기쁨과 슬픔 모두 함께 하고 싶다.
“왜 이렇게 열심히냐고요? 처음에는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교당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배우지 못한 것이 원불교 교도로 혹 자격이 부족할까, 부족감을 메우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함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는 것이 공부’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노트에 법문을 적는 대신, 한 평생 다른 이들에게 베풀며 법을 실천한 그녀는 이제 기쁜 소식이 있으면 교도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교당의 어머니기도 하다.
# 주고 받는 이치
4남매의 어머니로, 성격 급한 남편의 아내로 살면서 사방이 벽인 듯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그녀. 하지만 짓고 받고, 주고 받는 이치를 안 이후에는 모든 것이 재산처럼 든든했다고 한다. 이것은 남편이 쓰러져 4년 동안 병간호를 했던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매 순간을 행복하게 남편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했지요.”
남편 곁에서 법문도 듣고, 성가를 부르며 그 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고 가는 길’에 대해서도 얘기 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이었을까. 4년을 병석에 있던 남편은 출근하는 아들내외를 방긋이 웃으며 손 흔들어 배웅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김 교도의 마음도 편안히 간 남편 덕에 편안했다.
“후회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그저 남편과 함께 교당에 다니던 그 때가 그립지요.”
바람이 있다면 남편이 아들내외의 자식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것, 그리고 그 손자와 교당에 같이 다니면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행복할 거라는 것이 그녀의 작지만 소중한 올해의 바람이다.
김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