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거리에는 두 달에 한 번씩 눈길을 끄는 광고물이 등장 한다. 동네 음악회를 알리는 안내장이다. 이 음악회는 저명한 음악인과 예술인들이 직접 출연하여 판소리, 가요, 오페라, 뮤지컬과 각종 악기 연주 등 모든 장르에 걸쳐 연주와 공연, 그리고 해설을 병행하는 이른바 격조 높은 해설식 콘서트로 강남지역에서는 꽤나 이름이 나있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사랑방 음악회’다.
제17회 사랑방음악회(제목:청춘유랑극단) / 일시 : 2011년 11월 25일 (금) pm7:00 / 장소 : 대치2동 주민자치센터 강당 < 입장료는 라면 한 봉지 >
이번 공연은 17회째로 제목은 ‘청춘유랑극단’ - 저 50년대의 우리 청춘유랑극단을 그대로 옮겨 왔다고 하였다. 안내장 겉면에는 빨간 콧등에 동그란 자전거 바퀴 안경을 걸치고 우스꽝스런 콧수염에다가 분홍빛 나비넥타이를 맨 - 그 옛날 무성영화시절 변사(辯士)의 캐릭터가 코믹한 제스춰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다름 아닌 그 기발한 음악회의 입장료였다.
“아-니, 무슨 이런 입장료도 다 있나?”
“입장료가 라면 한 봉지야!”
공연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무래도 저 <라면 한 봉지>가 이끌어 낸 부담 없는 친근감과 잔잔한 감동이 절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 사랑방 공연장 쪽으로 향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이 음악회에는 그간 한국 최고의 기타 연주가 조상구 목원대 교수와 러시아의 Pavel khlovsky 가 협연한 기타리싸이틀을 비롯하여 실로 쉽게 만나기가 어려운 저명한 음악.예술인들이 직접 자원하여 이 콘서트를 더욱 알차게 이끌어 왔다고 한다.
그간 주민들의 예상외의 관심과 호응 속에서 항상 초만원을 이뤄온 이 음악회는 이제 이 동네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대치동의 명품 자랑거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회를 추진해 온 데에는 그 나름의 사정과 특별한 목표가 있었다. 이름난 이 부자동네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지역에도 의외로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단다. 그래서 먼저 외롭고 힘든 이웃의 가장소녀들과 독거노인들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뜻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 사랑방음악회라고.
이번 사랑방 음악회의 입장료로 모아진 약 200여 봉지의 라면도 바로 그러한 취지에 따라 그 자리에서 지역의 동장님을 통해 기증을 하였다.
엊그제다. 어쩌다가, 이 동네의 이른 바 - ‘대치(大峙)조찬회’라는 모임에 참석했다. 매달 첫째 목요일 아침 7시에 동네의 조그만 설렁탕집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자리. 알고 보니, 지금까지 매달 한 번씩 열어온 사랑방음악회, 또 매달 1만원씩의 회원들 회비로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현재, 8명의 고등학생들에게 16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는 ‘대치장학회’, 그리고 또, 누구나 서로 부담 없이 편안하게 만나 전통차와 커피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북카페를 겸한- 만남의 장소 ‘고양이마실찻집’의 단골손님 등,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조찬모임이다.
그날은 동네 음식점 주인아저씨, 인근 파출소 소장님, 대학 강사님, 얼마 전 조그만 소호 비즈니스를 창업했다는 가정주부님, 이제 막 취업을 한 젊은이, 그리고 저 남양주에서까지 새벽길을 달려온 어느 기업체 사원 등 열 너 댓 명의 맴버들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무언가 뜻을 함께 하려는 정성과 열의가 느껴지는 모임이었다.
이와 같이 ‘사랑방음악회’가 해를 거듭 할수록 빚을 발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무님의 뜻과 열정 때문이라고 한다. 교화(敎化)와 봉사는 바로 ‘가까운 내 이웃에서부터’라고 하는 교무님의 사실적인 교역관(敎役觀)이 바로 이러한 활동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 참석자가 설명을 해 주었다.
‘라면 한 봉지!’ - 말로는 하기 쉬워도 막상 모든 주민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 그것을 자발적으로 실행하게 한다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말이다.
진심으로, 이 <라면 한 봉지>들이 만들어갈 알뜰한 사랑과 자비의 울림이 더욱 더 크게, 더 널리 퍼져나가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