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은혜, 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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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은혜, 나의 행복'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04.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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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명 일원가족 꽃 핀 ... 여의도교당 김옥금, 안유옥 교도




시작은, 교당 툇마루에 서 있던 천사 같은 소녀에게 첫눈에 반한 소년에서부터였다. 그녀를 보기위해 굽이굽이 먼 길 걸어 교당을 나가기 시작한 그, 마음을 숨긴 수줍은 편지가 봄여름가을겨울을 오가고, 다시 봄이 왔을 때 두 사람은 교당의 청년부부 1호가 되었다. 11명 일원가족의 시작이었다.



# 평생의 동반자, 그대


“저는 별로 생각 없었어요. 근데 잊을만하면 교무님이 ‘옥금이(남편)한테 편지가 왔다’고 얘기하시면서, 편지 내용은 안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왔으면 왔지 왜?’ 그러다가 점점 궁금해지는 거예요. 다 우리 교무님 덕분이었지요.”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준 교무님과 교당 덕에 시골마을 초유에 없는 자유연애를 시작한 김옥금, 안유옥 교도, ‘딴따라 패에게 절대 딸을 줄 수 없다’던 처가식구를 설득한 것도 ‘내가 보증한다’는 교무님의 한 마디와 ‘교당 다니는 청년’이란 딱 한 가지 이유였다.


“‘교무님만 믿는다’는 부모님 말씀에 인생이 달라졌지요. 부모님을 실망시키기도 싫었지만 누구보다 저를 믿는다던 교무님에게 누를 끼칠 수 없었으니까요.”


그 좋아하던 낚시와 기타는 물론 교법에 몸을 맞추기 위해 바로 술과 담배를 끊은 김 교도. 부부가 함께 새벽 좌선과 기도를 하며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란 진리도 발견했다. 특히 없는 살림에도 하나주면 둘을 못 줘 후회하는 아내는(안 교도) 법 스승이었고, 공부 길을 함께 걷는 동지였다. 시간이 갈수록 처갓집의 1등 사위는 물론 교당의 든든한 기둥이 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벌써 40년이 흘렀네요. 그 동안 왜 미운 적이 없었겠어요. 근데 ‘다 네덕이다, 당신이 은혜다’는 남편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어요. 그 사람 또한 제가 언제나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닐텐데.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일원부부예요. 매일 가슴에 일원상을 그리며 사는 부부요.”


남편은 아내에게 원불교 교법 그 자체라, 아내는 남편에게 평생 법 테두리 안에서 성실히 살아온 사람이라. 또 ‘넉넉지 못한 살림에 고생 많았다’는 남편에, ‘은혜를 받은 기억 밖에 없다’ 답하는 아내. “네, 이렇게 평생 손잡고 교당 다닐겁니다. 평생 그렇게 했 듯이요.”



#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해~


“대종사님에게 받은 은혜를 보은하는 길은 일원가족이라고 생각해 열심히 불공 드렸지요.”


부부의 작전명은 ‘손자손녀 주말 돌보기’. 아이들 때문에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핑계를 미리 주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손자녀(안준영, 연수, 김현빈, 은지) 넷과 신나게 뛰어놀고 거실에 6명이 쭈르륵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얘기하다 잠들다보면 그 순간이 행복 그 자체. ‘내일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 교당가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하면 서로 ‘내가 1등으로 일어났다. 교당 늦겠다.’며 오히려 서두르는 바람에 일요일 아침이면 정신이 쏙 빠질 정도다.


“딸에게는 ‘네가 교도로서 모범을 보여야 며느리도 출석한다’고 말했더니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렇게 11년을 함께 교당을 다니니, 시누 올케이기 전에 법동지예요.”


모였다하면 ‘오늘 설교 말씀 중에 이런 부분이 좋더라. 어머니 저희는 그 부분이 좋았다’며 이야기꽃 피우는 그들. 그러다보니 슬며시 소외감(?) 느낀 아들과 사위 또한 자연스레 출석으로 이어지며 여의도교당 교도들 부러움 한 몸에 받는 11명 일원대가족이 되었다.


“저희가 아이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지요. 땅이 더욱 단단해지고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요.”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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