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교수
이런 뜻깊은 자리에서 강연하게 되니까 영광이면서도 많이 떨립니다. ‘한국에 원불교가 있고, 또 여성성직자분들이 원불교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만큼 자랑스러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제목은 제가 정한 것이 아닙
니다. ‘통일시대의 여성성직자의 역할’은 여성성직자들 모
셔놓고 여성성직자들 역할을 말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
앞에서 설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화단 어른들께서 정
해주셔서 할 수 없이 들고 나왔는데요, 여성성직자들의 역할
보다는 통일시대 문제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정전에 나타난 대종사의 시국관
시대를 통찰하는 것이 본래 원불교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교표어에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것처
럼 시대에 맞는 출발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정전 영역사업을 거들 큰 복을 얻었습니다만 그 때 정전을
여러분 읽고 생각한 것이 총서편에서도 먼저 시국에 대해 먼
저 말씀하시고 그 다음 교리를 정리해나간 것이 정전이다 하
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역자분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되
는 부분은 제13장 「최초의 법어」 4.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에서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갖출 것이요’라
는 대목인데, 저도 교직생활을 하면서 참 무서운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전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냥 첫 제목에서 시국을 말
씀한 것이 아니고 시국에 관한 말에서 출발해서 이것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최초법어가 정전 수행편에서 제13장인데 1장부터 12장까지
수행에 관한 여러가지 법문을 열거한 다음에 다시 최초의 법
어로 돌아갑니다. 그다음 고락에 대한 법문, 병든사회와 치료
법, 이것은 곧바로 개교의 동기로 이어진다고 생각되고 그다
음에 영육쌍전법은 교법의 총설과 관련이 되고 그리고 마지
막으로 법위등급으로 이어져 대각여래위로 끝이나는데, 이런
것을 거치면 마지막에 대각여래위가 되는 해피엔딩, 일종의
드라마가 정전 안에 내재돼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최초법어를 보면 원불교가 불법을 기초로 삼고 있지
만, 최초의 법어는 유학을 재해석한 것 같습니다. 대학에 수
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얘기 했는데 최초법
어는 바로 수신의 요법으로 시작하고 제가의 요법으로 넘어
가는데 치국 쪽에서는 달라집니다. 이것 역시 시대를 감안한
변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는 일제 식민지였기 때문에
우리가 일제 식민지 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일본 국민으로서
시국을 어떻게 한다, 이렇게 하면 참 우스꽝스러운 태도가 될
것이고 반대로 나라가 없으니까 독립을 해서 치국을 하자하
면 불온문서가 되고,(웃음) 종교의 경전보다는 그 시대의 정
치서가 되겠죠. 3번의 강자 약자 진화상의 요법, 이것은 분명
히 일본은 강자로서 우리를 억누르고 있고 식민지 조선은 약
자로서 억압을 받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상생의 관계로 바
꿀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고, 동시에
일본과 조선만이 아니고 세계 어느 나라에나 해당되는 치국
의 요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천하 대
목에 가서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을 말씀하신 것은 대학
의 구조로 본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마지막의 단계에 가
서 지도인으로 각자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것이 제대로
된다면 치국 평천하가 제대로 된다하는 것도 시대를 관찰하
면서 시대에 부응하는 법문을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통일 시대를 얘기하는 것이 단순한 통일시대 교
양강좌라기 보다는 교무님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시대에
부응하는 작업을 하는, 큰 사업과 관련되리라 생각합니다.
세계사업과 민족사업
원불교 교단은 어떻게 보면 세계 사업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종사님 당시에도 세계 사업을 하셨고,
또 이것은 제가 정확히 전해 들었는지 모르지만, 대산 종사님
께서 견성을 생각하지 말고 세계사업할 생각을 해라 이런 말
씀 하셨다고 그래요, 대산 종사님께서 견성하지 말라는 말씀
은 아닐 것이고 ‘원불교에서는 견성성불하는 공부와 세계
사업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하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세
계사업이라고 민족사업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사업
은 1차적으로 우리 민족의 사업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원불교
적 관점에서 보면 역시 창립당시부터 추구해온 세계사업 이
상으로서 민족사업을 해내야 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민족
사업을 세계 사업 이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세계사업이 민족사업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새삼스
럽게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만, 정산종사 법어 도운편에도
대세계주의를 말씀하시면서 ‘대세계주의가 우리 개인주의
가족주의 단체주의 국가주의에 국한을 벗어나는 것이다’하
면서 곧 바로 하신 말씀이 ‘그렇다고 해서 개인주의 가족주
의 단체주의 국가주의를 버리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취지로 하신 법문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문제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적인 시각을 갖고 세계 사업
의 일환으로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또 민족의 일원이고 국가
의 시민이고 그런만큼, 그런 표현은 세계주의에 포함해서 진
행해야 되리라고 봅니다.
통일로 분단체제 극복
저는 그런 식의 통일을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습니다. 단순히 분단을 극복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국
토의 분단만 극복한다면 통일이 되는것이지만은 분단체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분단으로 형성된 한반도 남북에 걸친 잘못
된 체제를, 잘못된 사회를 우리가 통일사업을 통해서 좀 더
나은 체제로, 나은 사회로 바꾸는 것을 통해서만 분단체제가
극복되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한핏줄 한민족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한민족
한국가를 이루자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반도 한민족의 경우에는 우리가 부당하게 분단을 당했으니
까. 하나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욕구가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을 세계 차원에서 옮겨 생각하면 어떤 나라는 여러 민족
이 더불어 살기도 하고, 또 어떤 민족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 역시 그런 나라가 되는 것이 바
람직할지 모릅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기존의 국가체제를 허
물고 따로 독립을 하든가 합쳐야 겠다하다보니까 온갖 유혈
사태가 생기고 분쟁이 생기고 있습니다.
세계사업의 차원에서는 우리 한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뭉쳐
살겠다는 민족주의적인 열망만 가지고는 바른 길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떻게 해서든 통일만 되면 제일이
다. 통일지상주의도 제가 다른 나라의 통일을 검토해 볼려고
합니다만 잘된 통일, 못된 통일도 있고 한반도에서 여러가지
잘못될 가능성도 많은데 ‘무조건 통일이면 다된다’하는 것
도 문제가 있습니다. 또 우리 현실에서는 남북이 갈라져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한쪽에서 너무 빨리
합치자고 서두르면 오히려 ‘이거 먹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조성하게 되고 오히려 긴장이 더해지고 통일이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통일을 부르짖는 것이 통일을 저해하는
그런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통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한반도에는 분단체제라는 것이 있고
우리가 이것을 극복해 나가자’ 이런 식으로 표현해 왔습니
다. 그래서 분단체제 극복이 제대로 돼서 남쪽에 있는 제도나
북쪽에 있는 현실 그 어느 것보다 나은 사회가 된다고 하면
이것이야 말로 우리 한반도, 한민족이 세계에 정신의 지도국
으로 태어나는, 떠오르는 길이고 전 세계에 걸쳐서 물질개벽
에 걸맞는 정신개벽을 이룩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
약 그런 사회를 우리가 이룩한다면 이것은 세계 역사에 유래
가 없는 사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통일과정
통일의 선례가 먼 과거까지 갈 것은 없다 하더라도 2차대전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 한반도처럼 이념의 대립이 끼어들어서
분단된 나라들이 통일된 경우가 세 나라가 있는데 연도순으
로 말씀드리면, 제일 먼저 통일된 것이 베트남이었지요, 1975
년에 사이공이 함락되고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북베
트남이 주도하는 통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베트남의 통일은
공산주의 세력이 무력으로 전국을 통일했기 때문에 우리 대
한민국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냐를 떠나서
우리 한반도에 적용될 수 없는 모델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
나 베트남의 경우에도 그나라의 역사에 비추어서 보면 완전
히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거기는 한반도와 달라서
프랑스 식민지하에서 오랫동안 민족해방운동이 벌어지다가 2
차대전 때 프랑스가 일단 인도지나 반도에서 물러나고 일본
군이 들어왔지요, 그랬다가 2차대전 때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
나니까 다시 프랑스 군대가 들어왔는데, 이 프랑스 군대와 전
쟁을 해서 민족해방 세력이 1954년 현재 프랑스를 거의 완전
히 꺾어뜨렸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가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미군이 대신 들어가서 국토를 분단하고 싸
운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베트남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처럼 이렇게 분단체제가 형성되서 무력통일로 끝난 통일이라
기 보다는 오랫동안 민족해방 세력이 상대를 바꾸어 가면서
계속 싸우고 싸운 끝에 1975년에 드디어 승리를 거둔 것입니
다. 그래서 한반도는 베트남과는 전혀 다른 역사, 다른 성격
의 분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방안은 적절하지 않고 실
제로 1953년에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날 때, 적화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적화통일이든, 북진통일이든, 물건너간 일이
라고 보아야만 합니다. 다만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남쪽에서는 ‘북쪽에서 쳐들
어온다’ 북쪽에서는 ‘남쪽에서 쳐들어 온다’ 이런 이야기
를 했지요. 전쟁이 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러나
전쟁이 터지면 이제는 남북이 다 죽는 것이지 베트남처럼 그
정도의 통일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봅니다.
독일의 흡수통일
두 번째가 독일통일입니다. 1989년에 동서냉전이 끝나면서 베
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통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
히 흡수통일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구서독의 독일연방공화국
이 동독의 여러 주들을 연방공화국에 헌법절차에 따라서 편
입시킴으로써 통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1990년
당시에 그런 통일이 이루어지니까 ‘다음 차례는 한반도다’
하여 들떠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까 우선 북한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동독보다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
다. 또 군사력은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군대입니다. 그래
서 잘못 건드리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죠. 또 하나
는 우리가 특히 아이엠에프사태를 통해서 실감한 것입니다만,
남쪽이 북한을 흡수통일해서 잘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아이엠에프사태를 맞았는데 만약 실제로 북한을 흡수
했다고 한다면 정말 우리는 해마다 아이엠에프로 구걸하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서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가운데 평화적인
통일을 하자고 방침을 세운 것도 아엠에프로 인한 교훈이 작
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반도 현실에 독일통일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구요.
사실은 독일내에서도 일방적으로 흡수통일이 되었기 때문에
이건 잘못됐다, 국토는 통일되고 체제는 통일이 되었는지 모
르지만 사람의 마음이 통일되지 않고 사회가 어떤 면에서는
더 나빠졌다. 적어도 서독사회는 통일되기전 보다 민주주의,
사회복지가 후퇴되었고, 동독에서도 통일이 되고 나아진 점이
있지만 2등 국민으로 불만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예멘식 통일
또 하나의 예가 예멘의 예입니다. 1990년에 남북예멘이 통일
이 되었습니다. 예멘지역은 원래가 아랍전통사회인데 그 중
일부가 영국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영국식민지가 되었던 나라
가 해방이 되면서 사회주의 정권이 출범한 것이 남예멘이었
습니다. 식민지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적이며 친서방적
인 나라가 북예멘이었는데 이 두 나라가 오랫동안 적대관계
와 교류가 있다가 90년에 두 나라 지도층이 회담을 해서 통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북예멘에서 국무총리
는 남예멘에서 나왔습니다. 꼭 3당이 합당하는 식으로 통일한
거죠. 이것이 참 멋있는 통일이죠. 지도자가 만나서 평화적으
로 합의해서 통일을 이루어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관점으로
보면 지도자들끼리 나누어 먹기 식으로 담합한 것이 나쁘게
얘기하면 야합입니다. 세계사업으로 통일한 것도 아니고 재대
로 된 민족사업도 아니고 지도자들간의 단체주의에 국한된
통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4년 지속됐는데 순조롭
지 못했습니다. 나눠먹기를 하다 서로 분쟁을 하다가 전면전
으로 가진 않았지만 드디어 양쪽 사이의 무력충돌이 일어났
습니다. 결국 북쪽이 승리해서 남쪽을 흡수통일 한 꼴이 되었
습니다.
이것 역시 한반도에 맞지 않은데요. 교훈이 나쁜 것을 떠나서
맞지 않는 것이 첫째는 예멘과 달리 남북관계는 훨씬 규모도
크고, 사회도 크고, 강대국의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남북한
지도자가 만나서 나눠먹기 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
다. 국민, 관료조직, 국제 열강들의 입김도 있고 해서 쉽게 담
합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죠. 담합을 해서 담합이
깨져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예멘에서처럼 한 두
군데에서 전쟁을 하다가 어느 한쪽이 이긴다고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식으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참혹한 사태가 일어나기 쉽게 되어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통
일이 된다면 멋진 통일이 되지. 예멘처럼의 통일은 역시 절대
현실성이 없습니다.
도덕통일
그러면 ‘분단을 지속하느냐 아니면 우리 실정에 맞는 창조
적인 통일을 하느냐’가 남게 됩니다. 창조적인 통일은 도덕
의 힘으로 하는 통일이라고 볼 수 있겠죠. 베트남은 무력통일
이고, 독일은 금력통일이고 예멘은 둘의 절충한 상태의 통일
이였는데 남은 통일방식은 그런 것과 다른, 도덕통일만의 선
택이 남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통일이 과연 도덕적
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최근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빌토 그라스를 중앙대학교에서 초청해 한국
과 독일의 지식인들이 참여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그라스를 비롯한 독일에서 온 분들, 한국분들을 포함해서 좋
은 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독일통일에 대해서 그라스씨가
강조한 것은 그분은 독일통일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는데 그
나마 평화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진 것은 오랫동안 독일에서는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특히, 빌리 그
란트 수상이 1969년에 동방정책이라는 것을 표방하면서 화해
와 교류를 추진해서 20여 년을 걸친 교류가 축적되었다는 점
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것을 들
었습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그러한 과정을 밟을 때 강조한 것
이 서독에서는 마지막에 너무 오만한 자세를 취해서 마음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주는 전통이 있으니까 동양적인 예의를 발휘하라고 말했
습니다. 바로 도덕통일의 한 면모라고 볼 수 있겠죠. 또 하나
는 우리사회의 퍼주기식 북한돕기라는 것을 듣고 통일을 하
면 어차피 비용이 들게 마련인데 지금 한국국민이 세금을 더
내서라도 북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통일비
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퍼주려면 확
실하게 퍼주라는 얘기겠죠. 그러면서도 독일에 대한 그의 결
론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마지막에 너무 서둘렀고, 국가연
합이라든가 이런 단계를 거쳐서 양쪽 민중들의 지혜가 모인
가운데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갑자기 통화를 통일하고
서독의 정치가들이 동독의 민중을 선동하고 오도해서 통일을
이루었기 때문에 지금도 독일은 제대로 통일되지 않았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일은 도덕통일이 못되었
다’는 자기반성으로 들리고 그런 면에서 한반도는 독일통일
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독일과 한반도는 다르다
제가 느낀 것은 한반도는 다른 형식이기 때문에 독일과는 전
혀 다른 방식의 통일을 해서 우리가 세계의 정신 지도국이
되고, 세계의 일등국으로 떠오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
각하지 않는 것 같애요. 독일통일 과정은 앞서 말했듯이 1969
년에 빌리 그란트의 동방정책이 시작되어 동서교류가 활발해
집니다. 그러다가 85년에 소련 고르바쵸프가 등장해 냉전이
무너지기 시작해 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0년에 통
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69년을 기점으로 삼는다고 하면 20
년 내지 21년이 걸려 통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식의
접근을 통한 통일을 우리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한다고 하면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그후에 교류가 많이 활발해
졌습니다만 정상회담이후의 교류형태가 69년 이전의 독일의
교류상태보다 훨씬 못 미칩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는
전쟁을 했었고, 독일은 전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은 분
단될 때 어느 정도 명분이 있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나치가
전쟁을 일으켜 전 세계에 불황을 가져다 줬기 때문에 패전
후 연합국 측이 독일을 분단한다고 할 때 독일사람들이 환영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꼴을 당해도 할 수 없다’고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깨트리기 위
해 누가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
던 것이죠.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정반대죠.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본이
고, 우리는 일본의 압제를 받은 사람들인데 우리가 분단을 당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너나 나나 통일을 열망했던 것이고 그런 통일열망을
업고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북의 김일성도 했고, 남의 이승만
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전쟁이 터졌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000년 이후의 시점에서도 1969년 이전의 독
일만도 못한 교류수준을 가지고 있고 접근을 하고 있는데 이
것을 독일식으로 차근차근 교류해 나간다면 최소한 20년은
더 걸린다고 봐야겠죠. 독일식으로 한다면 셈 법으로 한
30-40년은 잡아야 될 것이고, 더군다나 그러면서도 독일은 통
일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더 나은 통일을 한다면
50-100년은 잡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느 세월에 통
일을 합니까?
물론 그분들이 독일식 통일을 그대로 적용하라는 것은 아니
지만, 은연중에 우리가 그런 계산법을 따른다면 통일은 까마
득한 일이라는 얘기가 되고, 또 하나는 한국 민족은 얼마나
못났으면 아직도 통일을 못 이루고 있는가하고 생각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못난 점도 많지만 남북분단이 독
일 동서 분단에 비해 훨씬 사납고, 거칠고, 숨막히는 것은 우
리 민족이 못나서만이 아닙니다.
같이 살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떼어놓고, 전쟁까지 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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