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에 처음 왔을 때 봤던 현수막이 있다. 내용인 즉, 「화천~춘천 간 고속 열차를 개설하라.」그런데 살아갈수록 그 내용이 마음에 와 닿는다. 교당 주변을 둘러보면, 여길 봐도 산! 저길 봐도 산!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총부도 이곳에선 '어떻게 가지?'란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그럴까? 시간이 흐를수록 '고속열차가 개설되면 좋겠다'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이미 고속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서 있는 휴가·전역 장병들이다.
터벅거리는 버스는 형식일 뿐, 이미 마음은 고속열차를 타고 초고속으로 가고 있다. 그 열차를 타고 있는 장병들의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덩달아 나도 행복해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바로 6.25전쟁 희생 영령들이다. 그 영령들을 추모하며 '1129'란 숫자를 기억 해본다. 이 숫자는 6.25전쟁의 기간 일수다. 1129일을 마음에 담으며 생각한다. '참전 장병들은 얼마나 휴가와 전역을 꿈 꿨을까? 얼마나 집에 가고 싶었을까? 하루에도 수만 번 마음의 고속열차를 탔을텐데….'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련해진다. 송곳이 찌르듯 아프다. 이 마음이 일어나는 여러 원인 가운데 특별한 기연이 있다. 바로 할아버지다. 나의 할아버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6.25전쟁 때 전사하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묘비엔'화천에서 전사'라고 새겨있다. 첩첩산중인 이곳 화천에서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령들을 추모하는 씨앗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군종장교란 시절인연을 따라 자라난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참전 장병들만 집에 가는 마음의 고속열차를 타고 싶었을까? 아니다. 수많은 민간인들도 그랬을것이다. 실제 이 기간 동안 발생 된 직·간접적의 인명피해는 컸다. 국군 62만, 유엔군 16만, 북한군 93만, 중공군 100만, 민간인 250만, 이재민 370만, 전쟁 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 이산가족 1,000만 등 당시 남북한 인구 3,000만 명의 절반을 넘는 1,900여 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피해를 감내한 결과는 무엇인가? 250km에 이르는 휴전선이다. 휴전선을 보며 묻는다. '전장의 휴식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장병들과조국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지만 그 휴식은 너무나 길고도 긴 듯하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저 남쪽에서 영산회상 봄소식이 들려왔다.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앞두고'대한민국 근·현대 100년 해원·상생·치유·화합 천도재'를 실시하며, 독경단을 모집한다는 공지였다. 두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독경단을 신청하고 재비를 보냈다.
원불교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장병들에게 초재 3주 전부터 생사연마로 함께 공부도 했다. 독경단 밴드를 통해 정상덕 사무총장으로 부터 “군인선배들의 실질적인 혼을 달래드리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라며 방향성도 확인하였다.
개인적으론 화천에 올 때 예타원 전이창 종사님께서 써주신 '세계평화'란 글귀를 보면서 서원과 원력을 끊임없이 챙겼다. 심신재계하고 기도하며 천도재를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법력이 없기에 빠듯한 부대일정에도 불구하고 법력 높은 교무님들 기운을 받고자 1차 전무출신훈련도 다녀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천도재는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마련하신 진리의 고속열차란 감상이 들었다. 이 열차에 탑승하면 영생의 고향에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했다.
'영겁다생 만나기 어려운 특별편 기차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일체 모든 생가와 영가시여! 진리의 고속열차를 타고 성불제중 제생의세의 길로 함께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외쳤다. '이 천도재 절대! 절대! 포기 하지 않겠습니다. 절절포! 절절포! 절절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