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합정동에 있는 천주교 절두산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휴일이라 그런지 어린이와 청년들의 순례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룹으로 와서 해설사들의 해설을 진지하게 듣고 메모까지 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하고 예쁘던지요. 가족단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은 그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조명을 최대한 줄여 놓은 성당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기도와 묵상을 간절히 하고 있었습니다. 활짝 열린 성당 문이 반가웠습니다. 신자가 아니어도 성당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고 싶어지더군요. 수도 서울에, 쉽고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성지가 있는 천주교 신자들이 부러웠습니다.
교도님들!!
서울 북촌과 낙산에 우리 원불교의 성적지가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원기101년 드디어 서울 성적지 두 곳이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원기9년부터 돌아가신 원기28년까지 19년 동안 100회 이상 서울에 상경하여 제자들을 지도하셨기 때문에, 대종사님과 제자들께서 함께 다니시고 머무셨던 공간들이 북촌과 낙산에 많이 있습니다.
순례객들을 모시고 순례를 하면서 가끔은 울컥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습니다. 90년 전 간난의 초기, 대종사님 지도아래 공부하는 선진님들께 먼 길과 좁은 공간 그리고 껄그러운 음식은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소유한 집을 희사하고 출가의 길을 떠날 때 “기쁘고도 기쁘다, 상쾌하고도 상쾌하다”고 말씀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 선진님들의 혈성과 노력으로 창신동 서울교당과 돈암동 서울교당이 세워졌고 그때의 인연으로 오늘날의 서울과 경기지역에 교당들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북촌 계동의 선진님들의 집터와 창신동, 돈암동 서울교당터가 서울 성적지로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제야 찾아뵐 수 있게 되어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교도님들!!! 대종사님께서 원기9년 상경하여 서울의 첫 제자를 만난 성성원 선진댁, 대종사님께서 새해를 두 번이나 맞이하실 정도로 자주 찾으시고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법문을 내려주신 구타원 이공주 선진댁, 원불교 지방교화지로 처음 설립되고 성주를 내려주신 창신동 서울교당, 교당 지을 때 대종사님께서 두 번이나 오셔서 지도해주신 원불교 최초 신축교당인 돈암동 서울교당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일원의 진리를 드러내시고 새 회상을 창립하시려 헌신의 노력을 다 하신 박사시화, 박공명선, 이공주, 이성각, 민자연화, 이동진화. 김삼매화, 김영신, 성성원, 황정신행, 선진님들을 더 이상 외롭게 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종사님께서 귀중한 인연을 만나 서울교화의 초석을 다지신 북촌과 낙산에 오시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일심합력, 이소성대, 사무여한의 창립정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 성적지 북촌과 낙산은 우리 원불교인의 유산입니다. 유산으로 길이 보전되기 위해선 여러분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대종사님께서 거니시던 길을 걷고, 묵고 설법하신 집터와 교당터를 둘러보며 90년 전 대종사님께서 느끼셨을 포부와 기쁨과 고뇌를 나눠가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