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편집장(이하 박) : 김작가님이 쓰신「문익환 평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소태산 평전」을 쓰시면서 그때의 집필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김형수 작가(이하 김) : 1950년대 후반, 문 목사의 논문이 지적인 엘리트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종교의 소통문제를 고민하면서 자신의 지적인 고급언어를 평이(平易)한 일상 언어로 바꿔서 말합니다. 두발로 쓰는 주장 이외에는 다 하찮다는 거죠. 문익환 목사의 삶에서 놀랐던 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소태산이 그려내는 삶의 모습이 저에게는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소태산의 청소습관(흙과 모래는 따로 모아 마당의 빈곳을 메꾸고 쓰레기도 종류별로 분류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용도에 맞게 처리 했다. 「 대종경」실시품18장)과 같은 세세한 모습을 나중에 들었는데 감동이 컸습니다. “이분
성자 맞아…(웃음)”
박 : 평전을 보면 근대의 선각자 증산 강일순(1871~1909)과의 소태산의 관계를 기존의 관점과는 다르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그려 냈습니다. 어떻게 보셨는지요?
김 : 개연성을 더듬어 보면 당시 호남의 상황에서 소태산이 증산과 대립하는 관계가 아닌 이상에 찾아가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운 최제우(1824~1864)의 경우 칼춤(劍舞)을 추는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맡기는 혁명의 장엄한 결단이 모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강증산의 삶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동학혁명에 실패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제사를 지내주면서 안타까워한 부분입니다. 농민들에 대한 어머니와 같은 깊은 연민이었죠. 혁명으로 발현된 수운의 삶과 신비주의로 발현된 증산의 삶이 계승된 소태산의 삶, 특히 '혈인성사(血印聖事)'의 사건을 봤을 때 어떻게 개인의 자아를 세상의 것으로 승화시켜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놀라운 거죠.
박 : 원불교를 한국 근대사상의 계승자로 봤을 때 소태산과 수운, 증산의 관계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 : 원불교는 불법연구회 시절에 불법(佛法)에 관한 연구를 이미 마쳤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후천개벽과 해원상생이라는 민족 사상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혹자는 원불교를 현대 불교의 관점에서 이해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또다른 구원의 사상으로 정확하게 구현된 소태산의 가르침은 후천 시대의 사상적 형태로 피어난 민족종교의 눈부신 성과라고 봅니다.
박 : 원불교의 정체성 확립에 관한 주제가 최근의 큰 이슈인데 독자적 종교, 새로운 불교, 한국의 민족종교 등의 여러 가지 관점이 존재합니다.
김 : 일제강점기에 서양이나 동양에서 보편성을 얻은 기성 종교는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민족종교는 살아남기 어려웠습니다. 이 와중에 원불교가 태어났다는 것은 엄청난 시련을 이겨낸 겁니다. 국가와 민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찬란한 빛이 나는 것입니다. 영광 촌에서 이렇게 대범하고 자신 있는 종교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특히 3·1운동에서 보인 소태산의 반응('개벽의 상두소리', 「정산종사법어」국운편 3장)은 참으로 감동적인 것입니다.
소태산의'금강(金剛)'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금강'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금강(自金剛)'인것이죠.
박 : 집필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요?
김 : 뒤늦게 찾은 자료를 통해서 문장을 고쳐가며 도산 안창호(1878~1938)가 총부에 다녀간 사건에 대한 맥락이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도산이 총부에 다녀간 것이「대종경(실시품 45장)」에 기록되어 있다) 제가 이 장면을 소설로 쓰면 안창호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민주적 보편성을 갖춘 불법연구회를 찾아 가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총부에 들어서는 순간'잘못 왔구나'하고 후회했을 것 같아요. 찾아와 준 것이 한편 고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연구회가 드러나게 되어 도리어 일제에게 탄압의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이 소태산은 꽤나 곤혹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이 이후 일제가 조직적으로 탄압하게 된 구실이 되죠. 이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창호는 총부에 들어가면서 느끼고, 소태산은 맞이하면서
느꼈을 것입니다. 소태산과 안창호가 만난 시간은 짧았습니다. 일본 경찰 두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니 도산이 빨리 비켜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소태산의 열반까지의 과정을 잘 드러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눈빛으로 통했겠죠.
박 : 독자들에게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 :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안에서 전해지고 있는 말씀들은 일제강점기 엄혹한 환경에서 정해 놓은 말입니다. 감안해야 합니다. 많은 드라마가 감춰졌을 겁니다. 종교에서 가장 관심이 큰 부분은 '진리'이고, 예술에서 관심이 큰 부분은 '매혹'입니다. 저는 소태산의 매혹적인 부분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작업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