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을찾아가는길
이진경 작가가 생활공간 겸 작업실로 쓰는 한 눈에 보기에도 비범한 홍천 작업실, 그가 차려준 집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내어 놓은 보이차 한 잔 으로 간만의 여유를 느껴본다.
자기가 맡은 일에는 냉정하리만큼 프로인 그에게 원불교 사람들과의 작업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아주 좋아요. 제가 좀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라 원불교에서 그동안 나온 디자인을'구리다'고 했는데도 다 경청해 주고, 또 디자인을 내 뜻대로 하지 못하게 하면 작업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다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작년 12월에 이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원불교에 대해서는 기본적 지식도 없고 시간도 필요했다는 이진경 작가, “처음엔 캐릭터 하나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꽃을 피우려고 해도 씨앗, 공기, 토양이 필요한데 얼추 진행한 것이 지금 나온 대각개교절 포스터죠. 원불교에서는 잘 쓰지 않는 빨간색이 쓰여서 놀랐다고 하셨답니다.”
이쯤 되니 그가 어떻게'토종'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유학을 가려고 유럽에 갔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학교를 들어갈까 둘러보려고 가본 건데 일 년 정도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깨달은점이 있었습니다. 미적 감각은 기후와 관계있고 그 다음이 역사와도 관련이 있죠. 그러다 보니 색깔을 보는 감각도 다르죠. 예를 들면 녹색도 그 지역에 가장 많은 침엽수의 색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기후에 따라 표현하는 색도 다르다는 걸 알게됐죠. 그래서 서로 미감이 다르죠. 이런 식으로 우리와 미감이 다른 곳에서 공부를 해야하나 회의를 느꼈어요. 특히 저는 매끼니 김치를 먹어야 해서 여기서 못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밖에 나가야 안을 더 잘 살펴보는 것일까? 유럽에서 오히려 우리 것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는 이 작가,
“판소리는 창하는 사람과 고수 한 명이 청중들과 함께 장단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극에 개입하지요. 소리하는 사람은일인 다역을 하면서 무대 구분도, 좌우 대칭도 없이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중심삼아 극을 펼치죠. 우리 문화는 유럽 문화랑 비교해도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명색이 올림픽도 개최한 나라인데'한국은 중국말 쓰냐? 일본말 쓰냐?'라고 묻고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우리 문화에 대해서 보통 수준의 상식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우리 문화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대학원을 들어간 것이 아니라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한국의 전통문화, 시조, 가사, 한문, 동양 미학, 철학, 서예를 그때 배웠어요. 지금도 여전히 저는 한국적인, 동양적인'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 혼자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2005년 쌈지가 인사동에 조성한 복합문화 공간'쌈지길', 그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가 되었던 곳으로 새로운 문화적 시도로 지금도 각광을 받는 명소다. 어떤 계기로 인연이 맺어지게 됐는지 안 물어 볼 수 없을 터,
“마침 쌈지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쓰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림과 로고를 쓰고 싶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2년을 투자해 만들게 됐죠. 당시에는 민화로 로고를 만드는 것이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그것이 한국적이고 직관적으로 더 끌린다고 좋아했습니다. 꽃이 바람과 물과 땅의 도움을 받아 피듯이 저 혼자 작업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거죠”
쌈지길이 만들어 질 당시에는 거리의 간판도 패션 브랜드도 모두 영어가 판을 치던 시절이었고, 개성 있는 한글 폰
트(글씨체)하나 구하기 힘들었던 때였다. “연말에 대형백화점에'Happy New Year'가 아니라'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글로 붙어 있는걸 봤어요. '시절이 바뀌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조금은 영향을 미쳤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다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저도 받았다고 생각 했지요”나의 예술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으쓱할 법도한데 말미에는 혼자 한 것이 아니고 주고받은 거라며 자신을 낮춘다.
“원불교와 함께 일을 하게된 건 개인적으로 좋은'접속'이라고 봐요. 이것도 내 운명이라는 기꺼운 마음이 있어요. 저는'한국적인 것'에 코드가 있는 사람이라 그래서 이 작업을 한다고 수락하게 됐지요. 나이가 들어서 이 일을 하게 되어서 좋고 예술적으로도 나름 성장한 후에 작업을 함께 하게되어 더 좋습니다”
마냥 좋다고만 하니 은근히 꼬집어 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원불교 문화예술의 방향을 물었더니, “문화적 정책을 결정하는 꼭지점이 필요합니다. 원불교의 각 부서와 단위가 서로 열심히는 하지만 그에 비해 단일한 구조로 링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왕이 나라를 세울 때 도량형을 통일하듯이 기준점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교리에 바탕 해서 사용할 이미지를 정하고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 수준을 갖춘 사람이 전문적으로 문화예술 정책을 집행하도록 해야 합니다”기다린 것처럼 예리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그리고 한 마디 곁들인다.
“저는 많은 교무님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교무님들은 지극해서 좋아요. 그것이 한 사람의 영적인 성숙이고 됨됨이라고 봅니다. 특히 이번 일을 하면서 문화사회부에서 참 많이 배려하고 보살펴 주셨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알고 보니 이 작가는 밀당의 고수였다.
# 나의 작품, 나의 희망
법등축제를 준비하는 이 작가의 구상을 들어봤다. 눈빛을 보아하니 법등축제를 통해 총부를 들었다 놨다 할 생각인 것 같다.
“저에게 전권이 있으면 다 바꾸겠는데 그게 좀 아쉬워요.(웃음) 총부 구내의 법문 표지와 건물 안내 표지의 디자인도 해결하고 싶어요. 할 것은 많은데 예산이 없어요. 머리털 빠지게 계산해서 예산을 최대한 아끼려고 하지만 쉽지 않네요. 원불교의 일원상은 정말 대단한 상징 입니다. 이렇게 집약적이고 멋진 상징을 가진 종교는 원불교밖에 없다고 봐요. 거대한 일원상을 만들어서 세워놓고 싶고, 삼학을'세 가지 마음 닦는 길'로 풀어서'마음보는 길',' 마음 고요히 머무는 길',' 마음 쓰는 길'을 상징물로 세울 생각입니다”그 이상은 비밀이란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나?
말이 길어 지루했는지 숙소와 바로 붙어있는 작업실을 소개한다. 그동안 진행한 작품들을 아낌없이 꺼내어 필자에게 선보인다. 자신의 소중한 자녀를 소개하듯 정성을 들여 설명을 하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그는 영락없는 천상 예술가다.
편집장 박대성 교무
(끝)
작가 이진경은 1967년 서울 생, 덕성여자대학교 졸업,
금호미술관, 도쿄 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성곡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에서 여러 번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2002년부터 '쌈지길'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로고 ·공간 디자인 및 '이진경체'폰트를 제작했다.
지금은 '쌈지농부', '농부로부터' 디렉터로 강원도 홍천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