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사상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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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사상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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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0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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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원불교를 새 시대를 전망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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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사상과 함께 “사요”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르침이다. 특히 “사요”는 조선조에서 이어온 유교의 가부장적 사회제도의 영향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으며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천부적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악습에 대한 비판과 그 혁신에 대한 것이다.


「정전」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자력양성', ' 지자(智者)본위', ' 타자녀 교육', ' 공도자 숭배'이다. 특히 반상(班常) 적서(嫡庶) 노소(老少) 남녀(男女) 종족(種族)을 차별하는 사회적 악습(惡習)을 비판하고 자타(自他)의 국한을 벗어나지 못하고 원근(遠近)친소(親疎)에 끌리는 마음이 심하여 사회 전체의 진화와 발전에 저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자력양성'과 '지자본위'에서는 반상, 적서, 노소, 남녀, 종족의 차별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고, 또한 '타자녀 교육'과 '공도자 숭배'에서는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인류사회 전체가 진화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사요'가운데 원불교의 남녀평등사상을 주제로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소태산 대종사 당시에는 '남녀권리동일'이 현재 교전(敎典)에서 '자력양성'으로 바뀌면서 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감이 있고 더 나아가 그 실천도 많이 약화되었고 간혹 교법정신과 다르게 원불교식의 가부장제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남녀차별의 문화는 가부장적 위계적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철학사상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어 다른 사회적 차별의 기초와 그 기저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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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남녀평등 이념은 「불교정전」이 나오기 이전인 1930년대에는 '부부동권(夫婦同權)'이라 하였고 이후 '남녀권리동일', 그리고 소태산대종사의 열반 이후에 '자력양성(自力養成)'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참고적으로 밝힌다.


그리고 내용상에서 강조하는 것은 여성의 호주권, 경제권, 사교권, 교육권 등 모든 권리를 남자와 같이 하라는 혁신적인 내용이다. 소태산대종사의 남녀평등사상의 원안을 보면, 즉 '남녀권리동일'이라는 제목 하에 '남녀권리동일의 강령', ' 과거 조선여자의 생활조목', ' 남자로서 남녀권리동일권장의 조목' 그리고 '여자로서 남녀권리동일준비의 조목'의 순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강령과 여자로써 남녀권리동일 준비의 조목을 볼 필요가 있다.


강령에서는 “사람으로써 면할 수 없는 의무와 책임을 남녀가 다 같이 하자는 것이며, 남자는 여자로 인하여 여자는 남자로 인하여 자기의 이상과 포부를 실현치 못한다는 원망심이 없도록 하자”고 한다. 그리고 '여자로서 남녀권리동일준비의 조목'에서는 “1. 인류사회에 활동할 만한 교육을 남자와 같이 받을 것이요, 2. 직업에 근실하여 생활의 자유를 얻을 것이요, 3. 생부모의 생전사후를 과거 장자의 예로써 할 것이요, 4. 남자의 독특한 사랑과 의뢰를 구하지 말 것이요, 5. 앞의 준비조목 4조가 충분하지 못하여 남자에 미치지 못한 때에는 그 지도를 받을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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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인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현 사회 상황에서 보자면, 원불교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돋보이는 것 중 하나는 남녀평등의 이념이었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남녀평등문제는 뿌리 깊게 남아있지만 지난 3~40년 동안에 한국여성운동의 성과로 법적 제도적 변화를 많이 이끌어내었다. 1920년대 소태산대종사가 남녀평등 이념을 드러낼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남녀평등은 겨우 신여성들로부터 조금씩 제기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원불교 교단에서는 남녀차별을 없애고 남녀 똑같이 교무가 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장차 교단도 남녀 조직을 따로 하고 원기 36년에는 종법사도 남녀 각각 선출하기로 하는 등 그 당시 사회 보다 100년은 앞서는 급진적인 방식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소태산 당시에는 참으로 요원한 말로 들렸으나 교단 내에서는 상당히 뜨겁게 논쟁도 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상황에서 보자면 현 사회는 전국적인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부계혈통을 주로 한 호주제는 개선되었고, 여성의 사회활동을 저해하는 영유아 보육법도 정치권에서도 계속 개선을 해가는 노력을 하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 이에 비해서 교단적인 자각이나 개선의 노력은 많이 부족하여 아직도 소태산대종사의 꿈은 요원해 보이는 이상향으로 남아있다. 원불교 2세기에는 이 부족한 점을 찾아서 교단적으로 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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