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산책 | 죽음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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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산책 | 죽음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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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3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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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무의 '유림산책’(儒林散策) ⑪ | 박세웅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

박 교무의 유림산책(새연재-옛날대종경자리에).jpg

무술년 나이 40세. 대종사 대각을 하였던 26세가 되기 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종사처럼 대각(大覺)은 하지 못해도 소각(小覺)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나이를 넘은 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부처는 35세에 도를 이루었으니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35세가 되기까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다시 그 나이조차 넘어 올해 40세가 되었다. 대종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나이가 40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한다.” 내 나이 40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없는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말씀이다.


공자는 “나이가 40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그대로 끝나고 말 것이다.” 『( 논어』,「 양화」: 年四十而見惡焉이면其終也已니라.)라고 말씀한다. 공자는 나이가 40세가 되면 덕이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때까지도 만약에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결국 그 사람은 덕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인생을 마치게 될 것임을 경계한 것이다. 나아가 배우는 자들이 하루빨리 악을 고치고 선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권면하는 자비의 말씀이기도 하다.


한편 제자 자로가 '죽음'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는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논어』,「 선진」:未知生이면 焉知死리오.)라고 답한다. 이에 대해 어떤 주석가는 공자가 자로에게 죽음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며, 유학은 오직 현실의 삶만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주장한다. 공자는 정말 그렇게 말씀한 것일까? 대종사는 “범상한 사람들은 현세(現世)에 사는것만 큰 일로 알지마는, 지각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아나니, 그는 다름이 아니라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는 내역과,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니라.”라고 말씀한다. 대종사의 생사관에 따르면, 공자는 죽음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생사가 둘이 아닌 자리에서 잘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으로 이해해야 좋을 것이다.


우리가 죽음 보따리를 챙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사라는 것은 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고 가는 변화일 뿐이라는 '생멸 없는 진리'와 그 변화의 주체는 바로 나로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오직 내가 짓는 바에 따라 달려있다는 '인과 있는 진리'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존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에 한 치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천하의 대도요, 일대사(一大事)가 된다.


대종사의 '나이가 40이 되면 죽음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라'는 말씀과 공자의 '나이가 40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그대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말씀은 사람으로서 나이가 이미 40에 이르면 죽어 가는 도를 알아 가지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에 많은 준비가 있어야만 법답게 죽으리라는 점을 말씀하신 것이리라. 이에 대산종사는 세상에서 아무리 고귀한 생활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수도하는 사람이 진리생활을 하며 살고 죽는 것에 비하면 마치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고 하루아침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이제라도 그동안 죽음 보따리에 무엇을 넣고 살았는지 점검해봐야겠다. 그런데 보따리 안에 그 수많은 것 중에 무엇을 빼고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대종사가 직접 써주신 죽음 보따리 잘 싸는 설명서인 『정전』이 있다. 『정전』에서 하라는 것은 기어이 해서 채워 넣고, 하지 말라는 것은 기어이 하지 말아서 넣지 말자. 그리고 보따리 잘 보이는 곳에다가 다음과 같이 써놓고 영생을 오가며 잊지 말자. 절대 잊지 말자.


“법답게 죽어야 또한 법답게 나서 다시 법답게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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