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긍정적인 정체성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바로 '회복탄력성'
삶에서 아무리 상실을 겪지 않겠다고 조심하고 다짐해도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언제든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겪으며 살고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운 상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관계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 관계에는 죽음으로 인한 직접적 이별의 측면도 있겠고 신뢰 관계의 깨짐으로 인한 정서적 이별도 포함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후자에 속하는 상실감을 몸서리치게 겪으며 이 봄을 맞이하고 있다.
# 회복(回復) : 모르는 단어가 아니지만 사전을 부러 찾아봤다.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 원래(元來/原來). '원래'라는 단어가 짧은 문장에서 두 번이나 사용되며 강조된다. '원래'를 이어서다시사전에서찾아봤다. '원래'는 '본디'와 같은 말. 모르던 단어가 아니지만 새삼 이 단어에 대해 주목성을 갖게 된 것은 연일 쏟아지는 미투(#MeToo)에 휘청거리는 우리 시대의 상실감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나 자신과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고자 한다.
지난 해 몇 번의 교통사고에 이어 욕실에서 넘어지며 고관절을 다쳐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사정을 알고 건강을 염려하는 분들께서 '어떠냐'라고 물으시면 '회복해가는 중입니다'라고 답변을 하면서도 그 '회복함'에 대한 단상이 매번 스쳐 지나간다.
지금껏 살아오며 휠체어나 목발과 같은 사물들을 보아왔으나 나의 일상으로 들어온 적이 없었으며,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 온 사물들이었다. 수술을 하며 내 몸은 이 낯선 사물들에 적응해나가며 하나가 되어 움직이려 애를 썼고, 이 사물들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하반신 척추마취 후 수술을 하고 난 후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이 낯선 사물들과 접촉하게 된 것이다.
살다 보면 '불운'을 만날 수 있다. 여러 번의 사고를 겪으며 수술을 하게 된 것은 나의 불운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게 '불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45세 되던 2006년 해외 지질조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차량이 전복된 후 전신마비를 겪었던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의 이상묵 교수는 “나에게 닥친 사고를 불운의 시작이라고 보지 않고, 몰랐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인생 방향의 전환”이라고 역설하며 장애인을 위한 융합기술의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자신의 삶을 회복해 나가고 있다.
필자도 이상묵 교수도 사전적 의미인 '원래의 회복'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저, 다만 필사적으로 회복해나가고자 할 뿐이다. 풀코스 마라톤대회를 출전할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했던 필자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풀코스 마라톤을 이전처럼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달리기를 이전처럼 못한다 해서, 즐겨 신던 하이힐을 신지 못한다 해서 나의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수용하며 상황을 바라보려 애쓸 뿐이다.
삶은 역경이란 코너링을 자주 선사하곤 한다. 평탄하게 길을 가다 갑자기 맞닥뜨린 커브 길의 각도가 때론 얼마나 핸들을 돌려야 할지 전방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때도 종종 펼쳐지곤 한다. 원래로 돌아가는 후진은 생각할 수도 없는 위험한 인생의 커브 길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가 더없이 중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공동체적 상실감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왕에 우리 앞에 펼쳐진 '상실'에 분노와 좌절로 점철되어 주저앉아 비난에 집중하기보다는 근원적으로 건강하게 다시금 작동될 수 있도록 바라보는 관점 세우기가 필요하다.
'회복탄력성'은 심리학, 정신의학, 간호학, 교육학, 유아교육,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는 개념이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이 사람에 따라 탄성이 다르다. 역경으로 인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일상의 흐름을 찾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어떤 불행한 사건이나 역경에 대해 어떻게 의미를 선택하고 부여하느냐에 따라 불행해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몸과 관계, 상실과 삶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역경을 긍정적인 정체성으로 만들어가는 이 과정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필사적 회복은 여유나 사치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