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사진을 꺼내보다가 '아직도 그 풍경이 거기에 남아 있을까'하는 궁금함에 불쑥 카메라를 메고 길을 나서곤 했다. 충남 공주의 공산성도 내게는 그런 곳이다. 공산성은 동쪽의 금강과 서남북의 차령산맥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성이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금강이 곰나루를 휘돌아 흐르고있다. 공북루에 이르면 공산성을 둘러싼 금강의 모습이 보인다.
4대강 정비사업으로 강폭은 넓어졌지만 옛 풍경을 잃어 그저 넓은 강일 뿐이었다. 공북루와 대척점인 곳에 진남루가 있다. 진남루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 봄빛의 아지랑이와 바람 속에 아득하게 보이는 고개가 있는데, 그곳이 우금치다.
공산성은 백제 시대에 토성으로 축조되었고 조선 시대를 거치며 석성으로 완성되었다. 그 후 붕괴된 담을 새로 쌓고 무너진 건축물들을 새로 짓거나 흔적을 찾아 유물로 등재하여 백제문화유적지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공산성에 갔더니 영은사, 만하루, 광복루, 쌍수정과 비석, 주초, 연못 터 등이 남아 있는 성내에는 못다 한 이야기를 쏟아내듯 깃발이 봄바람에 나부꼈고, 쌓아 올린 석축의 그림자 끝엔 돌을 쪼던 백성들의 손길이 묻어있는 듯했다.
“백제, 천오백 년, 별로 오랜 세월 아니다.……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신동엽의「금강」5장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며 끝없이 고단하기만 했던 그 날의 백성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상상해보았다.
나는 2010년 봄, 영은사 아래 만하루에 앉아서 포클레인의 굉음과 함께 강바닥이 파헤쳐지던 광경을 보았다. 물론 당시의 모습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는 없다. 다만 나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무참히 죽어 나간 뭇 생명을, 부당한 역사에 저항하며 힘없이 쓰러져간 민중의 함성을, 혁명의 자리를 상상력으로 보충하며 그 의미를 오늘의 자리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동학군의 진군로가 왜 한국 토착 정신사의 거점이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며 세월이 흘러도 누군가는 치열했던 날의 뒷모습을 결코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사진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다. 돌로 석축을 쌓고 만들어진 공산성도 한 때는 허물어졌다가 지금은 관광자원이 되어 다시 복원되고 있다. 사상도 저와 같아서 시대에 따라 번성을 누렸다가 스러지곤 한다. 금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르고 있고, 멀리 보이는 우금치에는 사람의 집들이 가득했다.
# 사진 설명 : 2010년 공주 공산성만하루에서바라본금강, '4대강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금강 정비 사업이 한창 진행될 때 영은사에서 내려온 스님이 뒷짐을 지고 강바닥이 파헤쳐지는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날 스님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