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나 성인이 되겠다는 서원은 소중한 것이지만 중도(中道)를 넘거나 집착에 머물게 되면 그 수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는 '그 무엇'이 되려고 수행을 해서는 또한 이룰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특정한 대가를 바라는 행위는 거래이지 수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 수행의 목표입니다. 일견 모순으로 보일지 모르나 애쓰지 않아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 시절에 선의 진리를 고스란히 담은 「벽암록」이라는 책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보입니다. 불교를 지극히 숭상해 도처에 절을 세우고 스님들을 공양했으며, 스스로 법복을 입고 경전을 강론해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린 양나라의 무제(武帝)와 그 유명한 달마대사의 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양무제는 은근히 자신의 공덕을 자랑해 달마대사의 인정을 받으려고 묻습니다. “짐은 사찰을 일으키고 스님들에게 도첩을 내렸는데, 무슨 공덕이 있겠습니까?”달마는 요즘 말로 시크하게답합니다. “공덕이없습니다(無功德)”
그렇다고 양무제의 지은 공덕이 어디로 가겠냐만 그것은 진실한 수행의 공덕이 아닙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전력을 다했던 보시와 수행의 공덕은 쥐려고 애를 쓸수록 흩어지는 손바닥의 모래알 같습니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힘을 써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대종사님께서도 “세상 사람들이 여의보주와 해인(海印)을 경전 가운데에서나 명산대천에서 찾아보려고 애쓰고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마치 물에서 달을 건지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 평생 정력만 소모시키고 세월만 허비하고 말 것이니 어찌 어리석지 아니 하리요. 자기의 마음을 얻어 보아서 마음 가운데 욕심 구름을 걷어 버리며 그 마음에 적공을 들여서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 자재할 힘만 있고 보면 그가 곧 여의보주인 것이다.(대종경 선외록 영보도국장, 5절)” 억지로 구하지 말고 오직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좌선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망상이나 졸음이 올 때, '왜 이렇게 망상이 떠오르고 조는 걸까? 나는 근기가 낮은 걸까? 졸지 말고, 잡념을 없애고 더 잘 해야 되는데…'등등의 갖가지 망상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애를 쓰고 용을 써도 망상이나 졸음이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자신을 통제하려는 노력이 반대로 통제 불능의 상태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럴 땐 그저 내려놓고 마음을 쉬게 만드는 것이 더욱 빠르게 망상과 졸음을 제어하는 길이 됩니다.
저는 우연한 인연이 있어 어린 시절부터 익힌 기공(氣功)과 태극권(太極拳)을 지금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어찌나 재미가 있는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종일 수련을 했습니다. 그러나 빨리 고수가 되고 싶은 욕심에 억지로 밀어 붙이면서 연습을 하다 보니 마음에는 조급증과 몸에는 긴장이 찾아 왔습니다. 애를 쓰고 애를 썼지만 진도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를 지도하셨던 사부(師傅)께서는 더 치열하게 밀어붙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은 쉬면서 힘 빼고 노는 것처럼 수련하라”고 지도하셨습니다. 사실 모든 수행은 애쓴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긴장을 푸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처럼 몸으로 체득하게 됐습니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서두르면 이룰 수 없습니다. 애쓰지 말고 몸과 마음에 힘을 뺍니다. 그리고 지그시(Slowly) 거기에 머무르십시오. 그때 보이는 것은 분명 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