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살았고 살았어도 죽은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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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살았고 살았어도 죽은 사람이 있다
  • 관리자
  • 승인 2018.08.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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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 사상 기행 - 18 | 천지은 교도 (원불교출판사 편집장,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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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착사상 기행을 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이, 단지 육신의 생사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밥을 먹고 호흡하면서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것이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의 황망한 죽음을 접하면서 이런 내 생각은 확고해졌다. 서민과 약자의 대변자로 살다간 이 사람의 죽음은 큰 충격과 함께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현실정치와 이념의 체제에 맞서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안겨준 아쉬움과 허전함은 특별했다.


수운의 사상 거처 가운데 마지막 장소로 나는 대구 중구 계산동 2가 현대백화점(대구점)앞 광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인파들 사이에 어른 키만 한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백화점과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번화가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비석이다. 이 비석이 바로 2017년에 세워진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다. 그렇다면 대구 번화가 한가운데 이 비석이 세워진 이유는 뭘까.


지금 빌딩 숲이 돼 버린 이곳은 수운이 운명을 달리한 곳이다. 그는 좌도난정(左道亂正), 즉 이단의 동학으로 백성을 속이고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1864년 3월 10일 대구 관덕정(觀德亭) 뜰에서 41세의 나이로 참형 당했다. 수운 최제우가 목숨 바친 관덕정 옛터가 비석이 세워진 곳에서 50여m 떨어져 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옛터 앞에 관덕정을 설명하는 작은 안내판이 서 있다.


대구는 수운 최제우가 순교한 옛 관덕정뿐만 아니라 경상 감영 옛 옥터와 형장으로 끌려갔던 대구 중부경찰서 일대가 동학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번화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수운과 대구의 관련성에 관해 물었을 때의 반응은 오히려 질문을 던진 내가 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수운이 순교한 지 1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그에대한 인식은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수운은 1824년 10월 28일 경북 월성군 현곡면에서 태어났다. 동학을 창시해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뜻의 시천주(侍天主) 사상과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전파했다. 그러면서 봉건사회의 악습과 매관매직하는 어지러운 사회를 개혁하자는 개벽사상을 주창했다. 그의 동학사상은 1894년 갑오개혁, 1904년 갑진개화운동, 1919년 3·1 만세운동으로 계승됐다. 따라서 수운의 순도는 동학의 끝이 아니라, 혁명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시작이었던 셈이다.


이번 '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토착사상 기행'이 나의 개인적인 여행 궤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한 번쯤 사상과 자연이 대면하여 만들고 있는 그 한적한 곳, 스산한 곳, 버려진 곳에 가서 명상도 좋고, 스치는 생각도 좋고, 잠시 마음을 돌리고 올 수 있는 '사상 여행'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 사진 설명 :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殉道碑) - 순도비는 2017년 5월 26일 대구 반월당 현대백화점 정문 앞에 어른 키만 한 높이로 세워져 있다.

수운은 1863년 11월 제자 23명과 함께 경주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던 중 철종이 죽자 1864년 1월 대구감영에서 심문받고 3월 대구 관덕정 뜰에서 참형 당했다. 순도비가 세워진 이곳은 수운이 순교한 옛 관덕정에서 약 50m 떨어진 가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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