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雨)의런던
파리 북역(北驛)에서 유로스타를 타니 두 시간을 조금 넘겨 영국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세인트 판크라스역에 내리니 역 내에 “I want my time with you”라고 적힌 전광판이 일행을 맞이한다. 그동안의 편견과는 달리 영국 사람들 의외로 낭만이 있다.
역 광장에 들어서니 '비의 나라'라는 별칭답게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런던 시민들은 우산조차 쓰지 않고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와는 달리 오른쪽에 달려있는 운전석과 반대로 진행되는 차선 덕분에 렌터카를 빌리자마자 작은 소동(?)도 벌어졌지만 그조차 영국에서는 어떤 수행처와 어떤 수행자들을 만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함께 멋진 추억으로 남을 일이었다.
# 그것조차욕망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남짓을 달리니 조용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아마라와띠(Amaravati Buddhist Monastery)사원(寺院)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존 학교건물을 고쳐 세워진 이곳(사진 1)은 태국의 고승인 아짠차 스님((Ajahn Chah 1918~1992 ; Ajahn은 태국어로 스님이라는 의미)의 법을 잇는 곳이다.
아마라바티 사원은 태국 상좌부 불교전통의 불교 사원(Theravada Buddhist monastery)으로 아짠차 스님의 첫 외국인 제자인 아짠 수메도(Ajahn Sumedho, 1934~)에 의해 1984년에 설립됐고, 1985년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2010년에 영국인 아짠 아마로(Ajahn Amaro, 1956~) 스님이 법을 계승하고 있다.
현재 상주하는 스님이 20여명, 사원의 일을 돕는 스텝도 2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가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자, 우리를 안내하던 아짠 순다리 스님이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더니 이내 포기하고 “수백 명이 넘어서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며 웃는다. 물론 모두 유럽 출신의 출가자들이다.
상좌부 불교의 전통에 따라 하루 한 끼만을 먹고(一種食) 수행을 하는데, 공양 시간에는 사원을 방문한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게 개방되며, 사원 한쪽에 준비된 불교와 명상 서적도 무료로 가져다 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사진 2) 또한 우리의 동·하선에 해당하는 수행 기간인 안거(安居) 역시 별도의 비용을 내지 않고 참석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자발적인 희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순다리 스님에게 “세상을 바꾸려면 어찌해야 하느냐”고 일행이 묻자, “불교는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조차 욕망이라고 알아차릴 뿐입니다”라고 답한다. 대승의 사회 참여적 성격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신선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오전 예불 시간이 되니 수행대중과 재가불자 및 참배객들이 모두 대법당에 앉아 빨리어(부처님 당대 사용된 고대어) 챈팅(예불)을 함께했다.(사진3) 필자가 위빠사나 수행을 하던 시절 함께했던 의례라서 더욱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이 없는 세계(無死界)'라는 의미를 가진 아마다와띠는 청명하고 또 고요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