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라 안나푸르나 트레킹 1일차_ 15명의 여성들.
돌아온 지 15일이 지났다. 보건소에서 말라리아 예방약을 처방받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시작해 체류 기간, 귀국 후에도 총 8주간 복용해야 하는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생각했다. '1월 14일부터 29일까지 15박 16일간 네팔을 다녀온 것이 실화인가?' 지난해 4분기 계획이었던 공공프로젝트 마무리와 두 권의 책 출간 작업을 끝내자마자 지독한 장염과 독감을 10여 일 앓다가 약 꾸러미를 싸 들고 출국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초, 출간한 <골디~ 물 한잔 마시고 가>는 네팔 서남쪽 끝 껀쩐뿔에 사는 빈민촌 마을의 아이들, 여성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교육과 자립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마을 프로젝트 이야기다. 출간과 연계하여 6개월 전부터 기획한 이번 네팔여행은 이 책을 읽고 참가 신청한 10대부터 50대 여성 6명과 저자, 편집자인 필자까지 8명의 여성이 함께했다. 전문 여행사가 아닌 책을 출간한 출판사와 저자가 함께 기획하고 참가자들과 봉사 프로그램 역할을 회의를 통해 준비하여 진행까지 완수했다. 마치 함께 손을 잡고 책 속으로 동시에 '하나, 둘, 셋!' 하고 뛰어든 것만 같은 특별한 북스토리 체험 여행이었다.
천 길 낭떠러지를 옆에 끼고 편도 19시간의 버스 타기로 꼬리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거친 일정, 네팔 현지 스태프 7명과 영어, 한국어, 네팔어를 뒤섞어 소통하며 1박 2일간 마을 아이들 55명의 생애 첫 '1박 2일 마을 밖 캠프' 봉사도 참가자 70명 모두 건강하게 완료했다. 8명의 참가자가 각지에서 모인 교복, 책 등의 다양한 기증물품이 담긴 23kg 수하물을 한국에서 네팔 껀쩐뿔까지 전달하는 중요한 전달 임무가 있었다. 덕분에 8명의 참가자가 백팩 외에 끄는 캐리어 짐만 총 15개라는 어마무시한 짐을 끌고 다녔다.
카트만두_껀쩐뿔 행 버스를 타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출발 전.
1주일간의 봉사 일정 후에는 네팔 여성 헬퍼 8명과 다리 부상자를 제외한 한국인 여성 7명, 총 15명의 여성들이 3박 4일간의 안나푸르나 트레킹까지 함께하는 숨가쁜 일정이었다. 와중에 해발 2880m 고지에 도착했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고산병으로 위급한 상황도 있었다. 다른 트레킹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쓰리 시스터즈>로 트레킹을 선택한 것은 운영 철학과 시스템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금녀의 영역이라 일컬어지던 히말라야 트레킹에 네팔 여성들의 주체적 자립과 일자리, 교육의 터전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여성 공정 트레킹 기업이다. 15일간 웃고 울었던 오만가지 에피소드를 지면에 고스란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아무튼 그렇게 15박 16일간의 '나눔과 공정한 삶, 참여와 관계'대해 고민하는 거친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저마다 다채로운 여러 겹의 기억세포를 축적하고 무사히,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은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네팔에서 찾은 기억의 맛이 있다. 긴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혀끝에서부터 떠오르는 오래된 맛의 기억이 아닐까. 17년 전 혼자 떠난 한 달간의 인도 배낭여행이 남긴 기억의 그 맛을 네팔의 밀크티, 찌아로 다시 만났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인도의 짜이, 네팔의 찌아는 이름이 다를 뿐 내게 같은 기억의 맛을 선물했다. '누군가'와 가슴 뭉클한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를 깊이 있게 만드는 농밀한 관계로 상호 발전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군가'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인도로 떠났던 서른두 살의 바로, 나 자신이다. 밤이고 낮이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몇 시간 만에 내려 새벽녘 추위를 녹여주는 찌아를 마시며 문득, 오래전 나 자신과 그렇게 연결되었다.
카트만두_ 유네스코 문화유산 <파슈파티나트> 사원과 화장터.
가장 기억에 남을 장소는 카트만두에 있는 파슈파티나트(Pashupa tinath) 힌두 사원이다. 힌두인들의 삶과 죽음의 철학이 공존하는 네팔의 바그마티강(Bagmati River)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인도 갠지스강의 발원지로 네팔에 있는 힌두교 최대의 성지(聖地)로, 주요 도시들을 가로지르며 네팔인의 종교, 역사, 삶을 품고 흐른다. 독실한 힌두교도들은 바그마티강에서 몸을 씻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고, 이곳에서 화장된다고 한다. 강둑에 길게 늘어선 화장터 가트(Ghat)에서는 가족의 시신을 태우면서 애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행자들도 화장터에서 시신을 태우는 광경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다. 시신이 타들어 가며 재가 되어 강으로 흘러가는 동안의 모든 냄새와 소리, 이 광경을 이렇게 지켜봐도 되는가 하는 문화적 생경함과 당혹감 사이의 묘한 기운들이 뒤섞이며 시간과 공간이 묵묵히 흘러갔다. 여러 겹의 시간성 위에 켜켜이 쌓인 그 문명의 층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간의 퇴적층을 가로질러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맥락을 들여다보려고 견디며 바라본 장례 풍경은 또렷하게 남게 될 것이다.
나마스떼, 네팔.
조티센터 1박2일 치소빠니 캠프 단체사진.
글·사진=김도경 책틈 편집장, 서울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