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자각(自覺)하라.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나타나든, 그냥 차분히 지켜보라. Mindfulness(마인드풀니스)란 깨어있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존 카밧진)
최근 들어 북미와 유럽에서는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이 크게 늘고, 지식층일수록 불교 서적을 읽고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천 년간 우리를 지배했던 동양의 불교는 어느덧 불교도의 수가 급속히 줄고 있는데, 어째서 서양에서는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일까요?
동양에서 불교가 쇠퇴한 것은 그동안 불법의 본지(本旨)를 망각하고, 과학문명시대에도 여전히 기복종교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서양의 기독교가 급격히 쇠퇴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구미(歐美)의 불교는 이와는 달리, 명상을 기초로 하는 수행중심의 불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불자들에게는 이제 수행이라 하면 누구나 마인드풀니스를 떠올릴 만큼 이것은 새로운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마인드풀니스는 1979년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메디컬센터의 존 카밧진 교수가 창안한 방법으로, 석가모니불이 성도(成道)한 수행법이라고 일컬어지는 위빠사나(vipassana)를 쉽고 단순한 표현을 써서 현대적 가치로 다시 살려낸 것입니다.
이 마인드풀니스는 불교 용어로 하면 사띠(sati)라고 하는 정념(正念) 수행인데, 언제 어디서나 적적성성하고 성성적적한 본래의 자기마음을 되찾고, 스스로의 무의식을 정화하며, 진공묘유의 성품으로써 완전한 자유와 해탈에 이르는 수행입니다.
이 수행법의 요령은 비(非)판단, 비쟁취, 비집착, 초심(初心) 등이며, 수행의 과정은 정신집중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로 성성적적한 마음 상태를 이뤄 공적영지가 나타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진행 과정과 결과를 보면 원불교 <정전>에 밝힌 무시선법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가령 ‘동(정)하여도 동(정)하는 바가 없고’, ‘모든 분별이 정(定)을 여의지 않으며’, ‘(경계를 대하여)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한 무시선법의 특징은 마인드풀니스의 깊은 경지에서도 똑같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원불교의 무시선법이 석가모니불이 정등각(正等覺)한 수행법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마인드풀니스가가 단순히 현대에 급조된 방편적인 수행법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 마인드풀니스 수행이, 알고 보면 우리 무시선법과 같다는 사실에 우리는 참으로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전 교단적으로 우리 교법 수행의 진수(眞髓)인 무시선법을 철저히 공부하여 이 법이 지닌 효과를 다투어 체험토록 해야 합니다.
불법은 하나입니다. 대종사께서 삼학병진의 수행법이며 사반공배(事半功倍)의 공부라고 했던 우리 무시선법을, 지금 어느새 서양의 불자들이 먼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8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