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시절, 필자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뛰어난 엘리트 공무원이었는데, 그는 필자보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고 칭찬을 하곤 했다. 그 당시는 우리말로 하는 것을 잘 알아듣는다고 하니 좀 의아스럽기까지 했는데, 요즘 와서 보니 우리가 살면서 상대방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고, 그 잘 못 들은 사실이 증폭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물론 자주 만나는 사람들 간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대부분 서로가 상대방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공식적인 조직에서조차 상사의 뜻을 잘못 이해해 일을 그르치는 부하 직원, 부하 직원의 말을 잘못 알아들어 의사결정을 잘못 내리는 상사, 거래 상대방의 정확한 의사를 모르고 계약을 체결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 등이 종종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화 당사자 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 소통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소통 부재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소통이 부족하여 오해가 일어나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고, 부부가 이혼하고, 가까운 친구 사이도 멀어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기가 들은 것을 자기 뜻대로 해석하여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실이 두 사람만 거쳐도 사실에서 크게 왜곡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필자는 최근에 ‘똑같은 이야기를 두 사람이 같이 들어도 저렇게 잘 못 알아들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경험했다.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왜곡은 더욱 증폭되고 이러한 왜곡된 사실이 결국 사건 당사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보면, 당사자의 억울함과 분노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하여 직장상사, 시댁, 주변 인연들에 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한다. 그러나 교당에서만큼은 사람에 대한 시시비비로 시간을 낭비하고 마음이 요란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으로 날이 서게 되는 것은 진급의 길이 아니라 강급의 길이다. 우리가 교당에 다니는 목적 중의 하나가 낙원생활을 하기 위함이라면, 교도 간의 대화는 일반 사회에서와는 다른 주제가 돼야 한다. 우리 원불교 교도들에게는 훈련이나 단회 때 필수 과목으로 하는 회화가 있다. 그리고 법회 중에 강연과 신앙수행담을 발표하기도 한다. 평상시 교도들이 만나서 반가움을 표할 때, 가급적이면 대화 주제가 공부거리나 신앙수행담이어서 법력증진에 도움이 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대산종사는 원기51년 신년법문에서 “종교인들에게는 항상 훈훈한 화기(和氣)가 넘쳐흘러야 할 것이니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면 헐뜯으려는 횡포한 기운들을 삭히어, 당하는 일마다 대하는 사람마다 항상 인자한 마음으로 맞이하여, 가정, 국가, 전 세계에 모든 살기(殺氣)를 깨끗이 씻고 화기가 넘치는 세계를 이룩하여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범부중생이 국가나 전 세계까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국한이 크다 할지라도 가정과 교당에서만큼은 인자한 마음으로 화기 넘치는 장소가 되도록 유념하고, 공부담이나 수행담을 일상화하자. 요즘 유튜브를 통해 법회와 선 정진 기도, 성리공부 등이 활발해졌다. 우리의 생활과 공부도 점차 시대에 익숙해져 가는 것처럼, 일원상 진리에 대한 이야기와 수행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주된 대화거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