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환원주의 경계하자
소태산의 창립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를 내려놓고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헌신하자는 무아봉공,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이룬다는 이소성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무여한의 근본정신이 옅어지면서 교단이 정체됐다는 반성이다. 창립정신 내지 창교정신으로 돌아가자, 또는 교법정신으로 무장하자는 의견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외침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실천을 담보하여야 한다.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사요 중 자력양성 조항은 1920년 ‘부부권리동일(夫婦權利同一)’로 이후 1932년 ‘남녀권리동일(男女權利同一)’로 변화된 후, 오늘날 ‘자력양성’으로 정리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녀평등이 가장 앞서 있다고 알려진 원불교가 여성예비교무들이 관행적으로 의무제출한 ‘정녀지원서’ 제도를 원기104년(2019년) 8월에야 폐지했다. 물론 이전에도 불합리한 이 제도에 대해 몇몇 교무가 문제를 제기하고 정녀 선서 또는 정녀 지원서 제출을 거부하기도 하였으나, 관습법이 실정법을 무력화시키는, 강고한 대세를 넘지 못했다. 고귀한 서원으로 독신을 서원하고 세상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숭고함이 ‘정화단’이라는 친목단체에 의해 순결주의라는 이분법적 굴레의 논리에 갇혀 ‘교무’라는 갑옷 속에 남녀차별의 문제를 덮어둔 채 남성들이 만든 가부장제의 문화 속에 외려 습합돼 버렸다. 결국 그 피해는 신입단원이 거의 없어지는 지경을 당한 정화단 스스로가 자신의 발등을 찍은 꼴이 되었고, 나아가 여성교무 및 교단으로 피해가 돌아오고 말았다. 예비교무 중 여학생은 매우 희귀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시대과제에 소홀하지 말자
스승님들은 당면한 시대 과업을 외면하지 않았다. 소태산은 일제 식민통치라는 엄혹한 시기에 ‘강약진화상 요법’을 발표해 인류 평화를 만들어 가는 방책을 제시하며, 종교활동보다 먼저 생활개선운동과 저축조합운동으로 민족자본을 모아 방언공사를 이뤘다. 정산종사는 해방 후 좌우대립이 극심한 시기에 종교지도자로서 <건국론>을 발표하여 정치 지도자들에게 중도의 지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대산종사는 분단체제하 이데올로기 대립과 군사독재 시대에 “멸공(滅共) 반공(反共), 승공(勝共)보다 용공(容共), 화공(和共) 구공(救共)”을 주창하며 남북이 화합과 융화할 수 있는 지혜를 제시했다. 스승들은 중생 구원 불사를 하면서도 현실적인 민족 과제에도 결코 눈 감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평화운동’ 그리고 전 지구적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원불교기후행동’에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실천하는 종교라야 미래의 주세종교가 될 것이다. 신종교 연구의 대가인 김홍철 원로교무는 2016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신흥종교 창립과 쇠퇴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란 기자의 질문에 “모든 종교는 창시자가 오랜 기도생활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되면서 시작되고, 사회적 이슈에 지혜와 답을 주지 못할 때는 사라진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했다.
원불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코로나 19와 기후위기로 전 세계적인 비상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게 흐르고 있다. 이미 탈종교화 현상과 교조화(敎條化)된 기성종교에 실망하고 떠나는 대중들이 낯설지 않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고 개교표어에 담아낸 소태산 여래의 본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결과가 오늘의 위기를 자초했다.
새로운 백년을 지내고 교단 3대를 결산하고 4대를 준비하면서 교단은 새로운 기준(뉴 노멀)을 만들어야 한다. 교단의 재가출가 모든 대중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공유(公有)해야 한다. 재가출가가 함께 지혜를 모아낼 수 있도록 공사(公事) 정신을 살려내고 공공(公共)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교단의 모든 문제는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단의 문제가 돼야 하고 대중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 본의가 아닐지라도 대중을 소외(疏外)시키고, 타자화(他者化)시켜 온 지나온 시간을 철저하게 반성하여야 한다. 교단은 진정 비상상황이다.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으로 3대를 성찰하고 4대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完)
⁎이 글은 10월 5일 원불교여성회 25주년 기념심포지엄 발표문이다.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