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작가, 시집 수필집 동시 출판
그는 본래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원불교를 만나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도 꼬박 한 달이 지나서야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마음이란 걸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기를 쓰고 법문사경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순(60)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인생에 굵직굵직한 숙제를 마치고 남은 시간 자신의 삶을 살아보고자 찾은 복지관 문예창작반에서 정성스런 글쓰기로 <청계문학>에 등단하고 세 권의 책을 펴냈다. 2016년 생애 첫 출판작으로 『먹을 갈며』가 나왔고, 올해 9월에는 시집 『하늘에 그린 집』과 수필집 『나 홀로 집에』가 동시에 출간됐다. “글 쓰는 것보다 책 내는 과정이 더 힘들다”는 황혼의 작가 청타원 서옥진 교도(76·이문교당)를 지난 10일 교당에서 만났다.
“사람은 어떤 계기가 되었든 이루고자 하는 일을 가슴에 품고 살면 언젠가 간절해지는 날이 있어요. 나는 젊은 시절에 성가 반주하는 사람과 백발에도 독경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눈에 띄더라고요. 언젠가 나도 해봐야겠다고 서원을 세웠죠. 그랬더니 기회가 오더라고요.”
부족한 실력이지만 그가 지금도 교당에서 성가 반주를 하는 이유, 운동 삼아 천변을 걸으면서 <정전> 요지를 달달 외고 다니는 것도 그때 ‘꽂힌’ 서원을 잊지 않고 일관했기 때문이다.
시집과 수필집을 동시에 낼 수 있었던 것도 끊임없는 연마와 매일 거르지 않고 습작했던 정성의 결과다. 글이나 신문을 볼 때면 그는 무심으로 보지 않는다. 읽다가 ‘꽂히는’ 단어가 있으면 무조건 적어놓는다. 사물을 다르게 보는 눈과 메모하는 습관이 출판에 큰 힘이 됐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 신앙의 힘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요소다.
추상적인 시보다는 사물을 바라보는 직관력으로 시를 쓴다는 그는 고향, 가족, 계절, 그리고 신앙(기도)을 자주 등장시킨다. 시 ‘팽나무 마을’에는 그 모든 게 들어있었다.
‘내 고향 아름드리 팽나무/ 그 자리 그대로 온갖 것 다 보고 들으며/ 엄마 품 같이 정도 주고 바람도 안겨준다/ 예배당 옆에서 누가누가 하늘에 닿나/ 기도소리 찬송소리 영험한 듯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신통방통/ 세월 따라 잊힌 팽나무/ 마음의 고향인/ 성지의 하늘땅에 가득 가득 넘쳐나네/ 한 생각 번쩍 숙세의 인연이어라/ 이리보고 저리보고 보고 또 보아도/ 낯설지 않는 팽나무여!’
고향 김제에서 보았던 팽나무와의 추억을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원불교 영산성지에서 다시 만나 마음 고향 찾은 듯 기쁘고 반가운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글의 원천은 기도
“제가 복지관에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배웠지만 사실은 원불교 덕분이에요. 교도훈련 갔다 오면 감상문을 써서 발표하고, 매일 일기도 쓰게 하고, 봉사 다녀오면 소감도 쓰면서 글쓰기 단련을 했죠. 또 딸들과 해외여행을 가면 꼭 글을 남겨요. 그러니 무얼 보더라도 허투루 안 보죠. 다르게 보려고 노력해요.”
복지관 문화교실에서 붓글씨와 문인화도 배우고 이제는 등단해서 책도 세 권이나 냈으니 그가 애써 하고 싶은 일들은 거의 다 한 셈이다. 요즘 그는 교당 신축 불사 2천일 기도에 정성을 다하며 세속의 탐심·진심·치심을 물리치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워낙에 부지런하고 인내력이 강해 봉사하고 수행하는 재미는 일찍부터 알았지만, 기도에는 정성이 부족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신앙에는 꽂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교당 신축불사 2천일 기도를 결제하면서 기도에 꽂히기 시작한 것이 60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 정성이 일관됐다. 시집 『하늘에 그린 집』 표지는 장마가 한창일 때 기도 마치고 근처 놀이터에서 운동을 하다 하늘을 올려다본 풍광이다. 고층 아파트 사이로 맑게 열린 비개인 하늘이 마치 자신의 마음 같았다.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시집 표지에 사진을 넣어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 때문에 무엇을 하든 개념(원리) 파악이 먼저라는 그는 요즘 기도로써 아만심 내려놓는 공부에 정성을 들이는 중이다. 남편을 만나 원평교당에서 결혼식을 하고 육아하느라 한동안 외면했던 원불교는 서울로 이사와 방배교당을 거쳐 이문교당에 안착한 후로, 30년간 변함없는 신성으로 일관했다.
진리에 대한 탐구
지금도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면 일어나 기도와 염불, 사경을 하며 하루를 연다는 그는 “제가 기도할 때 특별히 바라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제 책이 꼭 읽혀야 할 사람에게 잘 전달되게 지혜를 달라고 해요. 앞으로는 100세 시대잖아요. 아직도 안 늦었어요. 자신이 꼭 하고 싶었던 꿈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꺼내서 해봤으면 해요. 이 책이 용기 없는 이들에게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해요”라고 권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지 물었더니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라 했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 안 와닿아요. 그걸 알아야겠는데…. 또한 건강해야 해요. 내가 있어야 종교도 있고, 자식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 여든까지 예상했던 봉사활동을 관절 수술로 67세에 그만둬야 했을 때란다. 그의 성정에 충분히 그럴 만하다.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