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타원님, 고은경 교무님!
벌써 종재를 맞이합니다. 지난 10월 12일 새벽 6시 거연히 열반에 든 지, 어느새 49일이 지났습니다. 열반 전날에도 동기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독경하고 평소 좋아하던 성가도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지요. 하지만 해타원님은 이미 호흡기에 의지하며 기운으로만 동기들의 마지막 인사를 묵묵히 받아주었습니다.
오랜 투병으로 수척해진 모습을 보면서 좀 더 일찍 찾아와 얘기도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죄송하고 마음 한쪽에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학년들이 해타원님의 완전한 해탈 천도를 염원하며 따로이 추도식을 올렸습니다. 곁에 계셨다면 회갑을 맞은 해타원님을 위해 조촐한 파티라도 했을 텐데... 잇몸을 환희 드러내며 밝게 웃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해타원님!
벌써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몇 번을 인사하고 보내드렸는데, 아직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산에 3학년으로 편입한 저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자상히 챙겨주셨던 해타원님! 키 큰 왕언니, 은경 교무님! 저의 든든한 동기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도반이자 수보리 왕언니로서 함께 해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해타원님은 16년 교사생활에서 다져진 책임감과 남다른 정의감을 갖추고, 앞서 준비하고, 강단 있게 실천하며, 동지들을 항상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솔선수범의 리더였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허허실실하다가도, 공부와 사업에서 공사는 분명히 하였고, 동기들이 퇴굴심을 내지 않도록 사기, 악기를 물리쳐주는 호법신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승님의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공가의 법도를 철저히 지키셨으며, 동기들의 신심, 공심, 공부심을 진작시켜주는 일원대도 영겁법자, 일원회상의 영겁주인이었습니다.
특히 해타워님은 시간만 되면 스승님을 찾아뵙고 문답하기를 즐겨 하였으며, 틈틈이 앞장서서 도반들과 함께 공부할 여건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 기회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저에게 먼저 권해주시고 챙겨주었지요. 저는 그런 해타원님 따라다니며, 혼자 뵙기 힘든 좌산상사님(당시 종법사)을 방학 때면 가까이 찾아뵐 수 있었고, 수도원의 법타원 종사님, 장산 종사님 등 원로스승님들을 찾아뵙고 문답감정을 받는 홍복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영산에서 첫 겨울을 날 때, 대종사님과 성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며 서문성 교무님을 모시고 3박4일 연휴 꼬박 교사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좌타원 김복환 (영산선학대) 총장님을 모시고 총장님 숙소였던 적공실에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일주일 내내 정전 훈련에 푹 빠져서 법열에 넘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해타원님이 먼저 마음을 내고 앞서 챙겨주신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교화현장에 나가고 얼마 후 모스크바교당으로 가신 해타원님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없었습니다. 더먼 학년 밴드가 개설되고서야 홍콩교당에서도 멋지고 신나게 교화하는 모습을 종종 전해주셨지요.
하지만 2016년 7월 그렇게 멋지고 신나게 잘 지내던 해타원님의 갑작스런 발병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한참 교화의 꽃을 피우고자 할 때 이것이 웬일입니까? 하지만, 해타원님은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시고, 이를 정진과 적공의 큰 공부 기회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의 투병 생활 중 의연하고 당당하게 너무도 멋지게 해내셨습니다.
투병 중에도 예전처럼 해타원님이 먼저 도반들의 공부를 챙겨주셨지요. 언제부터인가 매일같이 스승님의 법문 메시지를 보내주고, 산책 중에 만난 꽃 사진을 꽃말과 함께 전해주셨습니다.
사실 보내주신 메시지는 그때그때 제대로 읽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며칠 전에서야 보내준 법문을 다시 제대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법문과 꽃 사진 하나하나에 담았을 해타원님의 간절한 서원과 정성을 미리 헤아리지 못했던 점은 너무 죄송하고, 아쉬울 뿐입니다.
어느 날에는 직접 전화를 주셔서 홍콩교당에서 입교한 교도가 한국에 왔다며 저를 소개시켜 주셨지요. 당신이 떠난 후에도 챙겨줄 수 있도록 당부해 주시던 모습에서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과 교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해타원님을 떠나 보내드려야 합니다. 늘 스승님을 가까이 모시던 모습은 앞으로 스스로 큰 스승이 되기 위한 준비였을 것입니다. 러시아어, 중국어, 그리고 투병 중에도 에스페란토를 꾸준히 공부하던 모습은 앞으로 더 많은 세계인을 교화할 준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지들, 교도들 마지막까지 음으로 양으로 챙기던 모습은 다음 생에 함께 할 소중한 도반들의 손을 미리 잡아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신 해타원님! 이제는 편히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타원님의 열반을 맞이하며 저희도 조금씩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해타원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서로 노력해야만 그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타원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해타원님! 이제 교단과 세상에 대한 걱정 모두 다 저희에게 맡기시고, 부디 서원일념, 청정일념 잘 챙기시어, 잘 쉬었다가 진급된 모습으로 다시 오셔서 그동안 준비했던 그대로 제생의세 큰 서원 반드시 이루시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원기 105년 11월 29일 전무출신 고사 장진수 합장
해타원 고은경(解陀圓 高恩鏡) 교정은 원기88년 서성로교당 부교무를 시작으로 모스크바교당, 홍콩교당 주임교무로 봉직했다. 늦게 출가했지만 강한 책임감과 남다른 자비심으로 초임지 서성로교당에서 소년원 마음학교를 열어 청소년교화에 새 길을 열었다. 또한 출가 전, 16년간의 교직생활이 바탕이 돼, 모스크바교당 세종학당 개설의 주역으로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려 교화에 일조했다. 이후 홍콩교당의 교화 초석을 다지던 중, 발병하여 치료에 전념했으나 끝내 쾌차를 보지 못하고 10월 12일 열반했다. 해타원 교정의 세수는 61세, 법랍 22년 8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