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화의 시작은 ‘데이터(Data)’이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데이터 3법(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데이터는 21세기 원유’라고 했다. 원유는 가공을 통해 휘발유나 플라스틱, 화장품으로 가치를 만들어낸다. 기업, 특히 금융회사에서는 이미 원유가 많이 있는데 데이터 3법을 통해 타사의 고객정보까지 수집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올해부터 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핀테크 회사나 테크핀 회사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면서 고객들에게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그럼 원불교는 어떠한가? 종교가는 여타의 기업과 다르니 비교가 불가한가? 그렇지 않다. 원불교인의 경쟁상대는 타종교가 아니다. 바로 요란함·어리석음·그름에 헤매는 사람, 불신·탐욕·나·우로 점철된 사람, 뼛속 깊이 원망생활·타력생활에 빠진 사람, 배울 줄 모르는 사람,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 공익심 없는 사람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11과목을 밝혀줬고, 물 샐 틈 없이 공부하라고 상시응용 주의사항,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을 <정전>에 친히 편찬해 줬다. 이에 대한 법문도 많다. 불생불멸의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으나, 깨닫지 못한 상태라면 어떻게 깨닫게 할 것인가, 깨달은 다음의 세상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한 것이다.
다시 금융회사의 예시를 들자면, 금융회사는 이미 원유가 넘쳐난다. 그에 비해 원불교는 매장량은 무지 많으나 묻혀 있기만 할 뿐 실제 뽑아낸 원유는 미미한 상태이다. 수집하는 방법도 금융의 경우, 데이터 3법이라는 것을 통과시켜 달라고 국회에 요구하면서까지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반면, 원불교는 주로 전산실에서만 수집하고 있다. 가공의 경우 금융회사는 빅데이터 분석이나 머신러닝, 딥러닝 등을 활용하여 고객을 분류하고, 예측하며, 때와 장소에 적합하게 회원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기술을 발전시킨다. 원불교는 극히 작은 부서에서 데이터를 활용할 뿐, 대부분의 교화현장에서는 활용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원불교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기일기, 상시일기 데이터가 쌓이면 그 사람의 공부정도가 고스란히 측정된다. 유무념 대조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지도인에게 감정받으려면 그 데이터는 기록되고, 수집되고, 평가돼야 한다. 상시응용주의사항이나 교당내왕시주의사항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으로 어느 누구도 챙기지 않는다. 챙기려면 일이고, 어떻게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
교화단 일지는 어떠한가. 요즘 종이에 쓰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종이에 쓰려고 보니 빈칸에 쓸 내용은 많고, 단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중구난방이라 정리하기 어렵다. 요약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부족하다. 프로그램은 물 샐 틈 없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프로그램을 잘 운용할 지식이나 훈련이 부족하다. 이런 부분은 녹음으로 제출하게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음성 텍스트 변환 프로그램(STT)을 써서 용량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법위사정은 어떤지 살펴보자. 구글 설문을 활용하면 수집하기도 쉽지만, 일일이 종이에 써서 제출한다. 제출한 내용은 다시 PC에 입력한다. 교무들의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는 원불교 대사전에서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하고 있을까? 경전 법문집에서 가장 많이 읽는 법문은 어떤 법문일까? 이번 주 전국 교당에서 가장 많이 부른 성가는 어떤 성가인가? 이런 데이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데이터가 시작이다.
정릉교당 교도
2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