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법인 휘경학원(이사장 최준명)이 올해로 설립 51주년을 맞이했다. ‘하늘과 흙과 사람의 조화가 우리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에 교육의 대본(大本)은 우리의 마음을 밝고 바르게 가꾸는 것’이라는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의 건학이념으로 이어온 학교다.
휘경학원은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자리해 휘경여자중학교와 휘경여자고등학교를 함께 품고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도 ‘사람냄새’ 나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 과정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과정은 건산 최준명 이사장의 교육철학과 맞닿아 있다.
원불교 정신에 바탕한 인성교육의 배경에는 역대로 건학이념을 잃지 않고자 했던 교사들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12년째 국어교사 겸 법당교무로 인성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현지윤 휘경여자중학교 법당교무의 노력과 정성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가 지난 2월 9일 휘경여중 교감으로 임명을 받았다. 막중한 책임감에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그를 만나 그간의 교화 열정과 교육철학을 들어봤다.
휘경여중 교감으로 임명됐다. 소감은?
경험이 풍부하고 역량이 뛰어난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데, 제가 소임을 맡게 돼 마음이 무겁다. 다만 건산 최준명 이사장님(이하 이사장)이 오랜 시간 고심해 온 판단이고 선택이셨으리라 생각한다. 저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 이사장님의 안목과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정성스럽게 임하고자 한다.
교감은 학교 전체를 통찰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전에는 학생들만 생각하면 됐다. 이제는 업무의 색이 확 달라졌다. 학교의 전반적인 행정 업무 등 12년째 근무하면서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모두 살펴야 한다. 선생님들 간 관계, 그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도 중요해졌다. 휘경 가족 모두를 부처로 모시고 받드는 마음이 간절해지면서 많은 부분들이 달라진 점을 느낀다. 학기가 시작되면 이런 차이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 같다. 선생님들이 일하는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선생님들이 행복해야 학생들에게도 그 행복이 전달될 것 같다.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휘경학원하면 인성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수업은 그만두더라도 법당 교무의 역할은 계속 수행하게 될 텐데 그간의 소회를 듣고 싶다.
처음 법당 교무로 부임했을 때는 활동을 작게 시작했다. 교무로서 비춰진 모든 부분이 아이들에게 생소했을 것이다. 법회시간 편제의 어려움도 있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 과정이다 보니 과외시간을 활용해 법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오전 등교 시간 한 시간 전인 오전 7시 50분부터 법회를 진행했다. 작게라도 시작을 하겠다고 했는데, 초반부터 아이들 100여 명이 법회에 참석했다. 올해도 12년째 즐겁게 하고 있다. ‘법회’에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명칭도 ‘동그라미’로 고치고, 참석하는 아이들은 ‘동그리’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런 노력의 일환인지 언니 따라 함께 법회에 나온 자매들도 있고, 어머니가 먼저 권유해서 온 학생들도 있다. 가족에게 권할 수 있는 법회 활동을 펼쳐왔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돌아보면 동그리들이 나의 자산인 것 같다.
지난해 코로나19로 학생들이 의료진들에게 감사편지를 보낸 일이 크게 화제가 됐다. 그 소식을 좀 소개해 달라.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의료진들이 우리 학생들이 보낸 응원의 편지와 그림을 받고 “진심이 느껴져 너무 감동받았다”고 답을 해왔다. 그 편지들이 병원 게시판에 부착된 사진도 전달받았다. 이후 해당 의료기관은 저희 학교와 의료서비스가 가능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휘경여중 아이들의 따듯한 진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코로나19로 인해 휘경학원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혼란스럽고, 초기에는 적응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역 대책을 마련하는 데 굉장히 긴장해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저에게도 공교육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방역지침에 의해 학생들이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시작하면서 사교육의 혜택이나 부모의 역할이 잘 이뤄진 곳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반대로 부모가 집에 없거나 사교육 혜택을 못 받는 학생들은 그냥 방치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학교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관계 형성’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다 무너졌다. 그래서 휘경여중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교육복지대상학생 등)을 등교시켜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게 하고 급식을 제공했다. 이는 한 사람도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교육하라는 이사장님의 교육지침에 의해 실행할 수 있었다.
휘경학원만의 장점이 있다면?
휘경학원의 장점은 50년간 이어온 교육철학이다. 설립자의 교육철학이 후대로 이어지면서 퇴색되거나 희석되기 마련인데, 저희는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 세상을 위하는 인재를 길러 낸다는 교육철학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교육과 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조화롭게 잡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과 열정도 주목할 부분이다. 또한 도심 속 아름다운 교정도 학교의 자랑이다. 천연 잔디 운동장은 물론 새소리,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책길, 깨끗하고 모던한 건물과 교실 등 교과 외에도 교육환경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가는 이사장님의 특별한 애정이 담긴 곳이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학교 교육의 방향은?
그동안 학교 현장도 조금씩 변해왔지만, 코로나19로 그 속도가 빨라졌다. 대면 수업할 때는 아이들이 서열이나 순위 등에 굉장히 민감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자기만의 향기나 특기 등을 살리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질 것 같다. 시험 자체도 객관식 풀이보다는 과제 중심 평가로 전환할 예정이다. 올해 저희 학교가 평가 선도학교로 지정되면서 일부 과목에 이를 적용해볼 계획이다. 학습 과정에서 자신이 습득한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는 일종의 수시평가 개념이다. 자유학년제인 중학교 1학년은 물론, 향후 2~3학년들도 과제중심평가를 진행해 자신의 꿈을 펴는 교육환경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휘경여중이 다른 학교보다 선도적으로 수행하는 미래교육이 있다면?
여학교이지만 체험활동이나 과학교육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텃밭 가꾸기나 핸드볼 등 다양한 체험활동과 코딩교육, 정보화교육, 과학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같은 교정에 있는 휘경여자고등학교는 과학중점학교다. 여고 가운데 과학중점학교는 드문 편이다. 그래서 입시에 많은 도움이 된다.
교감으로서 휘경여중이나 휘경학원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지?
‘사람냄새 나는 여성을 기른다’는 이사장님의 교육철학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이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경륜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동그리들의 득도식에 정산종사님의 법문 ‘마음공부로 새 세상의 주인 되자’라는 타이틀을 항상 내건다. 이 두 가지가 휘경학원의 교육철학이고 방향이다.
원불교 전무출신으로서 원하는 학교 운영 방향이 있다면?
교감과 법당 교무의 역할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않다. 학교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부터 기도문을 통해 ‘우리 휘경학원이 천불만성이 발화되고 억조창생의 복문이 열리는 불토극락지, 마음공부 도량이 되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했다.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 다만 큰 바람이 있다면 휘경학원 출신의 전무출신 인재 발굴이다. 저의 숙제는 학생들이 “교무님처럼 살고 싶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인생의 많은 길 중에 전무출신의 길도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보여주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휘경학원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부탁드린다. 언제 어디서든, 바람결에라도 휘경학원 이야기가 들릴 때 교단과 재가출가 교도들에게 자부심이 되는 학교로 만들어가겠다.
사회=강법진 기자, 정리·사진=임경호 기자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