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기도의 달이다.
새해의 서원이 주춤해질 무렵 선물 같은 또 다른 새해, 설날이 찾아온다. 학생들이 개학을 맞이하는 3월이면 ‘그래, 다시!’라는 마음 속 울림과 함께 이번에는 제대로 실천해 보자는 다짐과 기도가 시작된다.
원기4년(1919년)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였던 3월 1일의 독립만세운동 당시 대종사께서는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드리자’며 기도로써 함께했다. 원기85년부터 20년 넘게 이어져오는 재가 4개 단체 주관의 산상기도 역시 3월의 시작과 함께 열린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 기운이 재 응집 하는 3월. 기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영화 ‘투캅스’를 보면 주인공인 부패형사가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교회에서 예배를 보며 열심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날 잠자리에서 형사가 ‘모처럼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더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하자 그 부인은 ‘그러게 내가 뭐랬냐. 교회 나가면 구원받는다고 했지 않았느냐’고 한다. 부부의 바람처럼 기도는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받고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과 같은 힘을 지녔을까.
‘피난처에 무신론자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시련에 처한 인간은 누구나 의지할 곳을 찾는다. 어쩌면 기도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의지하는 절대적인 힘과 소통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런데 ‘나에게 중요한 시험이 있으니 합격시켜 달라’ ‘이번에 투자한 주식이 대박을 치게 해 달라’는 식의 기복적인 기도는 소통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달라는 요청에 불과하다. 사실 그런 기도는 별다른 효과를 얻지도 못한다.
미국 보스턴 인근 심신의학연구소의 허버트 벤슨 박사는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은 1806명을 대상으로 일종의 기도효과 실험을 했다. 회복을 위해 기도를 받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집단, 기도를 받지 않고 이를 모르는 집단, 기도를 받고 이를 아는 집단으로 나눠 회복의 결과를 비교 분석했다. 2006년 미국 심장학회지에 발표된 결과를 보면 세 집단 간에 회복력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세 번째 집단의 경우 더 많은 합병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고했다.
법정스님은 ‘기도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한 소망’이며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산종사도 법신불에 호소하고 간청만 하는 것은 타력에 치우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각오와 실천할 것을 먼저 고백하고 거기에 대하여 위력을 내려 주기를 기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기도는 정성을 다해 서원을 이룰 수 있게 마음을 챙기는 과정이지 결과를 나의 뜻대로 만들기 위해 진리와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링컨 대통령은 ‘신이 내 편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내가 신의 편에 있다는 사실’이라며 기도할 때 자신이 신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신이 내 뜻대로 해 주기를 기대하는지 되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나. 〈정산종사법어〉 공도편 40장은 세상과 동지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다 좋게 하는 기도를 올리도록 제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것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전아(全我)의 마음이 필요하다.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지구촌의 누군가를 위한 기도는 전아의 마음에서 나온다.
기도의 달 3월. 우주전체를 품은 전아의 심정으로 진리의 편에 서서 결과가 아닌 과정에 정성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보자. 작은 기적은 거기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