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상승(陰陽相勝)의 도를 따라, 선행자는 후일에 상생(相生)의 과보를 받고, 악행자는 후일에 상극(相克)의 과보를 받는 것이 호리(毫釐)도 틀림이 없으되….」
「음양상승(陰陽相勝)의 도를 따라」
참회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구절은, 우리가 알듯이 고대 중국으로부터 내려온 동양적 세계관으로써, 불교에는 없던 표현입니다. 만약 이 문장이 현대에 쓰였더라면 아마 ‘인과응보의 진리를 따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상생(相生)의 과보」와 「상극(相克)의 과보」도 역시 ‘선한 과보’와 ‘악한 과보’로 바꿔놓아도 그 뜻에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영원히 참회개과(懺悔改過)하는 사람은 능히 상생상극의 업력(業力)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할 수 있나니, 그러므로 제불조사가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참회문을 열어 놓으셨나니라.」
문에 들어서자마자 매우 중요한 법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히 참회하고 잘못을 고치는 사람은, 자기가 지어놓은 선악의 업력을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앞 구절에서는 자기가 행한 선악의 과보를 받는 것이 털끝만큼도 틀림이 없다고 했으면서, 이제는 그 선악의 업력을 벗어날 수가 있다니,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선 「영원히 참회 개과한다」는 뜻을 정확히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 말은, 죄를 뉘우치고 그 이후로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막연한 의미가 아닙니다. 영원히 개과(改過)한다는 것은, 마음이 공원정(空圓正)의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그 어디에도 머물지(주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언가와 상생상극으로 얽힌 관계[업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그 무언가에 끌리거나 또는 배척하는 특수한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말입니다. 〈대종경〉 인과품에 이러한 법문이 있습니다.
대종사 한 교도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남편과 다시 인연을 맺지 아니하려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다 두지 말고, 오직 무심으로 대하라.」 (〈대종경〉 인과품 11장)
다시 말하면,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있으면 나는 그 대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의 업력을 벗어나는 길은, 위와 같이 내 마음속에 무언가[경계]를 향한 좋고 싫음, 밉고 고움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이것은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상생상극의 업력을 벗어나려면 이처럼 내 마음이 선악 어디에도 머물지 않아서, 아무 데도 착(着)이 없는 마음이어야 하며, 이것은 곧 우리 자성의 공원정(空圓正)을 쓰는 것입니다. 즉, 선악이 본래 없는 나의 본성을 깨닫고, 늘 상(相) 없는 마음을 쓰는 것이 영원히 선악의 업력을 벗어나는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죄복을 자유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가령 죄를 죄로 받지도 않고, 복을 복으로도 받지 않으며, 죄를 돌려 복으로도 만들고, 복을 돌려 죄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복을 짓고도 복에 머물지 않고, 죄를 지어도 괴로움을 받지 않으며, 복을 지으면서도 세상에서 치욕을 당하고, 죄를 지어도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일을 자유자재로 합니다.
이처럼 완전한 참회개과는 모든 업력을 벗어나 죄복을 자유로 하는 것입니다. 삼세 모든 부처님이 이 길을 따라서 완전한 자유와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5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