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회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1인당 1만 원으로 세계교화에
엄청난 힘을 보탠다는 것을
알면 모두가 놀란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고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할 때까지,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고 닮아가는 공부로 보살 되고 부처 될 때까지 나아갈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걸리고 막힘이 없도록 오늘도 수행정진에 여념이 없는 개포교당 장타원 김선형 교도(서울보은회 회장).
길을 걸을 때 김 교도의 걸음걸음은 영주의 음률과 하나가 된다. 주위의 인연들을 위한 감사와 위로와 용서의 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절로 되어진다.
“지난해 몸이 많이 좋지 않았다. 주위의 친한 친구들이 갑자기 열반하거나 큰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도 정리할 겨를 없이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마음이 바빴다”라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김 교도.
광대하고 영원한 사은을 가까이 모시고 있기에 김 교도의 일상은 은혜와 감사의 기도로 물들어 흔들림이 없다. 스스로를 점검하는 상시일기의 기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엄격해진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즘은, 인터넷 방송으로 원불교 교무들의 설법뿐만 아니라 이웃종교 지도자들의 강의까지 열심히 들으며 매 순간 깨어 있으려 노력한다.
대물림된 공심
김 교도는 원기106년 서울보은회 신임회장으로 임명됐다.
“좀 더 능력 있고 젊은 교도가 서울보은회를 이끌었으면 하는 마음에 사양도 했지만, 이왕 주어진 일에는 토를 달지 않고 기쁘게 일할 생각이다. 앞으로 보은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오랫동안 서울보은회를 이끌어온 소타원 김재성 전 회장의 노고에 대한 치하를 잊지 않는다.
김 교도와 서울보은회의 인연은 그녀의 어머니(고 위타원 송덕전 정사)로부터 시작한다. 교당을 세 개나 낼 정도로 신심과 공심이 장한 어머니는, 20년 전 보은클럽의 모임이 있을 때 딸을 데리고 오며 자연스레 보은회와 인연을 맺게 했다. 나의 일이라 생각하며 기쁘게 일하는 딸의 책임감을 높이 산 어머니의 사려 깊은 결정이었으리라.
보은회 회원이 되었을 때 맡았던 회계업무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김 교도가 맡고 있다. 1년에 보은회비가 6천만 원이 넘었을 정도로 회원이 많았으니, 그 회비를 미국·인도·중국·러시아·캄보디아·스리랑카·남미 등에 나누어 보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서로 힘을 합해 같이 가는 것이 좋아서 기쁘게 일했다는 그녀. 힘들어도 좋으니 보은회원이 더 늘어나서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세계 곳곳에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욕심을 그녀는 숨기지 않는다.
길을 걸을 때 김 교도의 걸음걸음은
영주의 음률과 하나가 된다.
주위의 인연들을 위한 감사와 위로와
용서의 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절로 되어진다.
젊은 보은회
“보은회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1인당 1만 원으로 세계교화에 엄청난 힘을 보탠다는 것을 알면 모두가 놀란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어려운 시절 보은회를 조직하여 교단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 했던 선진들이 많이 열반하셨다. 선진들의 뒤를 이어 젊은 교도들이 보은회에 들어와 활동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신임 회장으로서 과제는 회원 늘리기와 젊은 보은회 만들기”라며 김 교도는 후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한다.
재가단체가 귀하던 47년 전, 선진들의 혈성으로 만들어진 서울보은회에 대한 김 교도의 애정은 남다르다.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진리에 눈을 뜨도록 이끌어준 영원한 스승, 어머니의 공심이 대물림되어 그에게 여여히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천만사리에 비추어 걸리고 막힘이 없어 마음 꽃이 활짝 필 때까지, 오대양 육대주에 일원의 법음이 울려 퍼질 때까지 김 교도의 자신 수행과 세계 보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5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