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자칭 도인의 무리가 왕왕이 출현하여 계율과 인과를 중히 알지 아니하고 날로 자행자지(自行自止)를 행하면서 스스로 이르기를 무애행(無碍行)이라 하여 불문(佛門)을 더럽히는 일이 없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자성의 분별 없는 줄만 알고 분별 있는 줄은 모르는 연고라, 어찌 유무초월의 참 도를 알았다 하리요.」
성품을 깨치지 못했으면서도 거짓으로 세상을 속이는 사이비 도인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참 도인(道人)은 도를 깨치고 도를 떠나지 않으며 응용무념(應用無念)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도인이라며 계율과 인과의 법칙을 가볍게 여기고 제멋대로 사는[自行自止] 것을 무애행(無碍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성품의 공원정에서 나투는 무념(無念)·무상(無相)·무위(無爲)의 삶을 사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자성의 공적영지는 반드시 중도행을 나툽니다. 일체 경계를 분별하면서도 정작 분별함이 없고, 분별함이 없는 가운데 또한 두렷한(생생한) 분별이 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한 채 도를 깨쳤다 하고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것을 무애행이라 한다면, 뒷날 받게 될 과보는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또는, 견성만으로써 공부를 다 한 줄로 알고, 견성 후에는 참회도 소용이 없고 수행도 소용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비록 견성은 하였다 할지라도 천만 번뇌와 모든 착심이 동시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요 또는 삼대력(三大力)을 얻어 성불을 하였다 할지라도 정업(定業)은 능히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마땅히 이 점에 주의하여 사견(邪見)에 빠지지 말며 불조의 말씀을 오해하여 죄업을 경하게 알지 말지니라.」
견성과 해탈 성불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여기선 「성불을 하였다 할지라도 정업(定業)은 능히 면하지 못한다」는 구절을 마지막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해탈 열반을 얻은 부처님이 윤회를 벗어나 허공법계에 머무는 때에는, 그야말로 일체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업(業)도, 윤회도, 해탈도 모두 다 텅 비어있습니다.
그렇지만 방편으로 또 다시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는 때에는, 과거 성불하기 전에 중생의 몸으로 지었던 유위(有爲) 유상(有相)의 업을 반드시 다시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새로 몸을 얻어 이 세상에 출현하는 때에는 과거에 지었던 업보를 스스로 받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현상계에서 인과는 털끝만큼도 어김이 없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작은 죄업이라도 결코 그냥 넘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의 간절한 부촉 말씀입니다.
*불이문(不二門)에 대해서: 불이문이란 유무 시비 선악 생사 진속(眞俗) 보리와 번뇌, 속박과 해탈, 미혹과 깨침, 부처와 중생 등 상반되는 두 가지가 서로 둘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둘이 아니면서, 또 그렇다고 하나도 아닙니다. 물과 얼음에서 보듯이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닙니다(不二不一). 이를 모르면 참으로 불이문을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지금까지 참회문의 주요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독송할 때 안으로 그 뜻을 잘 새겨서 정법수행의 길로 모두 함께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