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클라인(Stefan Klein)이라는 독일 과학저널리즘 작가는 『Survival of the Nicest』(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생존)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 본성에 타인을 보살피고 협력하고자 하는 이타성이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이타적인 삶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물학적 존재를 증진하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도모함으로써, 생존가능성을 높이고 이타적인 삶을 선택하도록 진화해 왔다고 통찰하고 있다.
‘이타적이고 무아적인 훌륭한 인간의 삶’이라는 높은 가치를 실현하는 인생, 그리고 인격의 기준은 모든 종교적·영적 가르침이 공통으로 지향하고 제시해온 이상이다.
왜 인간은 타인을 돕고자 하며 이타적 삶을 추구하며 희생까지도 감수하면서 무아적인 삶을 살고자 할까? 인류는 왜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기로 선택해나가는 것일까? 갈수록 우리 사회는 이기적인 삶이 환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사람은 외로움과 소외감이라는 고통을 피할 수 없고.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타성의 추구가 이기성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서만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생물학적 원리, 질서, 작용일까?
인류는 조금씩 내적 안정감을 경험하게 된다.
드디어 높은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세우기에 이르고, 내적 기쁨과 희열을 경험하는 쪽으로
한층 더 세련되게 진화해왔다. 문명사회를 이룩하였다고
자부하는 인류이지만 대다수의 인류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생존위협의 내적 반응과 신호들이
여전히 내부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실존적 상황에 살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도덕이나 윤리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우리 서로 죽이지 말자, 획득한 것들은 상호 간의 동의 없이는 도둑질하거나 빼앗지 말자며 최우선적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통제된 상황을 담보할 상호 간 타협과 약속이행이 절실했을 것이다.
상호 간 생존을 위협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나아가 개인의 생활 질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기여하여 도덕은 점점 발전돼 왔을 것이다. 인류는 조금씩 내적 안정감을 경험하게 된다. 드디어 높은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세우기에 이르고, 내적 기쁨과 희열을 경험하는 쪽으로 한층 더 세련되게 진화해왔다. 문명사회를 이룩하였다고 자부하는 인류이지만 대다수의 인류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생존위협의 내적 반응과 신호들이 여전히 내부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실존적 상황에 살고 있다. 그래서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덜 진화된 도덕적 가치와 고양된 의식, 인격의 기준이 더욱 절실하게 추구된다.
스테판 클라인은 질문한다. 인간은 왜 이타적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진화해 왔을까?
이에 대한 현대과학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타인을 살피고 세상을 껴안고 염려하고 책임을 나누는 실천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우리를 외로움이나 우울감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세로토닌과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됨으로써 건강이 증진되며, 개인으로서 자신의 경계를 확장함으로써 폭넓은 관계를 가능하게 하여 물질적·경제적 환경이 향상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남을 돕는 것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다.
인류의 의식이 상승하고 진화할수록 이타성, 무아성의 실천은 자연스런 진행 방향으로 드러날 것이고, 보편적 상식이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인류는 공감, 공존이라는 내면의 가치와 질서로 굳건해질 것이고, 이러한 삶의 원리를 일찍부터 내면화하고 생활에 적극 활용한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환영받고 지지받게 될 것이다. 이타성은 가장 안전하고 믿음직한 인생의 투자이자 효과적인 삶의 기술이다.
이타적 삶을 실제로 보여준 부처나 성자들은 생명의 내적질서를 발견하고 그 원리와 질서가 이끄는 대로 맡기고 따랐을 것이다. 이타적 삶으로의 중심이동은 생명 본연의 궁극적 명령이다.